한.일 정상이 22일 투자협정(BIT)에 서명하는 동시에 자유무역협정(FTA) 논의에 '정부 참여'를 선언함에 따라 양국간 경제협력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양국은 공히 자타가 공인하는 `무역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이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터잡은 다자체제에 의존하면서 세계경제의 또다른 흐름인 `지역주의'나 `블록화'에 등한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뒤늦게 시작한 한.칠레 FTA 협상, 일.싱가포르 FTA협상에 이어 이번에 한.일 FTA 논의 수준을 격상시킴으로써 `WTO 회원국 중 지역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특히 앞으로 한.일 FTA 논의가 본궤도에 오를 경우 장차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강력한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성 논의도 급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한.중.일 민간이 참여하는 비즈니스포럼도 연내에 창설될 예정이어서 향후 3국간 FTA로까지 발전될 경우 일본의 첨단기술과 자본, 한국의 생산기술 및 경험, 중국의 노동력과 천연자원 등이 결합하면서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낼 전망이다. ◇BIT는 FTA로 가는 징검다리= 이번에 서명한 투자협정은 우리나라 역사상 첫 투자협정이자 지역경제협정으로, 지난 98년 11월 양국 통상장관이 투자협정 추진에 합의한 이후 지난해 12월말 타결됐다. 이 협정은 투자성립 전(前)단계부터 내국민대우를 부여하고 국산품 사용이나 내국인고용 등에 관한 강제이행의무 부과금지, 투자원금 및 과실의 송금 보장 등이 뼈대를 이루지만 안보나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차별 및 일시 제한조치도 담고 있다. 예외로는 향후 외국인투자에 대한 제한강화를 허용하는 분야로 우리측에서 방위.방송.전력.가스산업 등 17개분야, 일본측에서 수산업, 항공기산업 등 13개를 정하고외국인투자 제한을 강화하지 못하는 분야로는 우리측에서 벼.보리재배업, 육우사육업, 해상.항공운송업 등 10개, 일본측에서 석유.철도산업 등 16개를 규정했다. 이 협정으로 투자가 자동적으로 급증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투자를 끌어들이는 유인으로 작용하면서 우리측에 고용유발과 무역수지 개선, 산업구조 고도화, 기술.경영기법 전파, 세수증대 등의 효과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부품, 소재, 기계류 분야의 일본 기업은 생산기지를 한국으로 옮길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 우리 정부가 일본의 부품.소재기업이 무리를 지어 투자할 경우 전용공단을 만들어주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게다가 투자협정은 98년 이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아시아경제연구소간의 공동연구를 거쳐 2000년 9월 이후 재계 차원의 `한.일 FTA 비즈니스포럼'을 통해 진행중인 양국간 FTA논의에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미 비즈니스포럼은 지난 1월말 공동선언문을 통해 양국간 FTA 조기실현의 필요성을 밝힌데 이어 우리측 주관기관인 대한상의는 지난 18일 대정부 건의문에서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경제통합체 결성을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FTA 합동위 구성과 전망= 양국 정상은 이번에 정부와 업계,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산.관.학 합동위원회' 설치에 합의, 비즈니스포럼의 `바통'을 이어받게 했다. 이는 FTA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사정을 감안, 우선 정부가 발을 들여놓는 논의과정을 거쳐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한 뒤 사전 정지작업을 벌일 경우 향후 협상에 들어가더라도 신속한 타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양국은 후속 실무협의를 통해 위원회 구성방법과 FTA 범위를 포함한 논의의제, 할동시한이나 회의 주기 등 세부적인 사항을 상반기중 결정할 방침이다. 아직 예단키는 어렵지만 양국간 FTA가 체결될 경우 인구 1억7천만명의 거대시장 기반을 바탕으로 무역 장벽 없는 상품교역이 이뤄지고 국경을 넘나드는 기업간 제휴와 구조조정도 촉진돼 양국간 중복투자 문제도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보고서를 통해 한.일 FTA 체결시국내총생산(GDP) 수준은 단기적으로 0.22-0.33%포인트, 중장기적으로 0.82-1.90%포인트가 추가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가 더욱 악화되거나 일본 제조업의 기술과 마케팅력에 밀려 국내 주력제조업이 취약해지면서 일본경제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어서 합동위의 활동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