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1:20
수정2006.04.02 11:21
`착한 유괴'라는 단어의 조합이 가능할까.
가난한 사람이 부잣집 아이를 납치해 몸값을 받아낸 뒤 멀쩡하게 돌려보내는 게부(富) 혹은 자본의 분배 방식 중 하나라고 보는 발상은 어떨까.
박찬욱 감독의 신작「복수는 나의 것」은 `착한 유괴'라는 극중 표현만큼이나 낯선 영화다. 휴머니즘이 가득 묻어났던 전작「공동경비구역 JSA」의 그늘이 남아있을 법도 한데 좀체 찾아 볼 수 없다.「…JSA」에서 흥행성과 작품성의 절묘한 절충점을 찾았던 박 감독이 이번에는 아예 작가주의쪽으로 방향을 180도 선회한 듯 보인다.
각각 사적인 이유로 핏빛 복수극을 펼치는 개인들을 통해 인생과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는 이 영화의 표현 방식이 독특하다.
한국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하드 보일드' 장르를 표방해, 설명과 대사는 가능한 한 아꼈다. 일말의 동정이나 연민이 끼어들 구석도 없이 영상은 잔혹하면서도 무미건조하게 탈색했다. 작가주의 영화가 그렇듯, `취향'이 다른 관객에게는 불편하게다가올 법도 하다.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청각장애인 류(신하균)는 신부전증을 앓고있는 누나와 단둘이 산다. 신장을 이식해야만 살 수 있는 누나를 위해 장기 밀매단을 찾아간그는 퇴직금 1천만원과 제 신장마저 빼앗긴채 버려진다. 이때 누나에게 적합한 신장을 찾았으니 일주일 내로 수술비를 가져오라는 병원의 통보가 날아든다.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를 살리기위해 이 가난한 장애인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류의 여자 친구이자 극렬 운동권 학생인 영미(배두나)는 부잣집 아이를 유괴하자고 제안한다. "이 세상에는 `착한 유괴'도 있다"면서.
두 남녀가 중소기업 사장인 동진(송강호)의 딸을 납치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류가 몸값을 챙겨들고 기뻐할 동안 동생의 범죄 사실을 알게된 누나는 손목을 그어자살하고, 유괴한 아이 역시 뜻하지않게 강물에 빠져 죽고 만다.
아내도 떠나고 하나뿐인 딸마저 잃은 동진은 유괴범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누나를 잃은 류도 장기 밀매단을 응징하면서 복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복수는…」은 `오싹'하고 소름이 돋게 하는 영화다. 잔혹한 장면을 드러내놓고 보여주진 않지만 상상의 여지를 남겨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제작진은 시사회에 앞서 이례적으로 "임산부는 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류가 장기밀매범들의 심장을 꺼내 소금에 찍어 먹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피로 물든 도마와 칼, 소금이 스크린에 나타나면서 암시되고, 윙윙거리는 전기톱소리로 시체의 사지가 잘려나가는 것을 짐작케 할 정도다.
동진은 영미를 전기고문해서 살해하고 류를 자신의 딸이 빠져죽은 강속으로 끌고 들어가 발목의 아킬레스건을 잘라 익사시킨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복수의 의식을치르는 것이다. 마지막 동진의 운명 역시 이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이렇게 모두에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비극이라니. 예기치못한 사건 하나가 많은이들의 삶을 통째 비틀 수 있다니 인생은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가.
심각해야 할 상황에서 코믹한 대사를 삽입하고, 의도적으로 내러티브를 건너뛰거나 자장면 배달을 나왔다 시체가 돼 나가는 중국집 배달부의 운명처럼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는 죽음을 집어넣은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의 비극성은 주인공들의 복수의 칼날이 저마다 잘못된 과녁을 향해 꽂혔다는데 있다. 동진은 류를 죽일때 "난 네가 착한 놈이라는 것을 알지만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순진무구했던 청각장애인이, 자상했던 아버지가 극악무도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기까지 표면적으로는 개인적 원한을 앞세웠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그들의 분노는결국 우리 사회의 모순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