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3월말로 다가옴에 따라 새 총재감이라는 인사들의 이름이 지상에 오르내린다. 새로 뽑히는 총재가 대선결과에 따라 '1년 짜리'가 될 가능성도 있어 현 총재의 연임이 점쳐진다고도 한다. 총재자리는 임기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바꾸어야 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총재자리는 정권의 전리품일 수 없다. 올해로 한은은 창립 52주년을 맞는다. 총재를 역임한 사람은 현 총재를 포함해서 21명인데,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 법정임기 4년을 채운 총재는 4인,현 총재를 포함하면 5인에 불과하다. 총재로 재임하는 중 입각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흔히 영전이라고 했다. 중앙은행 총재를 법정임기와 상관없이 임기중에 마음대로 바꾸는 일이 관행처럼 자행됐는데,입각한 총재를 영전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중앙은행의 위상과 권위는 찾을 길이 아예 없었다. 그러니 한은이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그린스펀 의장의 경우를 굳이 들출 건 없지만,그는 1987년 레이건정부 때 취임해서 부시정부 클린턴정부를 거쳐 현 부시정부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개각소식이 전해질 때는 물론이고 중요한 자리가 바뀔 때가 되면 하마평에 오르는 사람은 많다.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거나,잘못을 저질러놓고 물러난 사람도 그런 자리를 거쳤다는 사실이 경력으로 화려하게 과대포장되어 거물처럼 알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거물급이라는 사람에게 실망한다. 능력이 검증된 인사도 많지만,허명무실(虛名無實)한 인사도 많다. 명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어도 유능한 알짜배기들은 더 많다. 이런 사람들은 맡은 일을 철저히 할뿐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임명권자가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눈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유능한 사람을 발탁해야 한다는 걸 누가 모르랴.하지만 그 능력을 임명권자가 어떤 시각으로 평가하느냐가 문제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으면서도 결국 망사(亡事)가 된 문민정부의 잘못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월29일 개각은 국민의 정부 들어 21번째였다. 평균 2.3개월마다 한번 꼴로 장관을 바꾼 셈이다. 사람을 잘못 썼기에 그랬을 것이다. 문민정부 때의 1.7개월(28회)보다 그래도 교체빈도가 나은 셈이니 이를 발전이라고 해야할까. 교육인적자원부는 일곱번,건설교통부는 여섯번 바뀌었다. 수백명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전학시키려 밤을 새우며 줄을 서는 것과 주택시장이 술렁이고 있는 것이 장관의 잦은 교체와 관계있는 것인지 한번 따져볼 일이다. 경륜도 전문성도 없는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열심히 하겠다'고 취임소감을 밝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기대했던 사람에게서 실망하고,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이 큰 업적을 남기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을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은총재는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자리다. 한은이 수립하고 집행하는 통화신용정책은 정부의 여러 정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정부정책을 견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견제와 균형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한은총재는 마땅히 중앙은행의 권한과 책임을 이해하고 실천력을 갖춘 인사라야 한다. 금융계는 물론 여야정치권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사를 찾아야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총재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금융에 관한 해박한 식견은 물론 경제전체의 흐름을 읽고 앞을 내다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다. 원래 없던 소신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가볍게 여기고 시류를 잘 타면서 살아온 사람에게 그걸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총재감이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추적해야 한다. 현 정부의 잘한 인사정책은 한은총재의 임기를 지켜주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출중한 중앙은행총재를 만들어내는 역사를 우리는 계속 써가야 한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