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지난 61년 출범한지 올해로 만 41세가 됐다. 전경련은 그동안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압축성장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정치자금 헌납과 정치적 특혜의 배분을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역할을 해왔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지난 92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많은 대기업 총수들이 비자금 사건으로 사법부의 심판을 받는 불행한 사태를 겪기도 했다. 90년대 말엔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전경련은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었다. 오너들의 친목단체라는 비판과 함께 태생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외환위기 이후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무너지고 상당수 기업들이 회원명부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전경련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경련 총회는 중요한 경제주체의 하나인 기업인들을 위한 잔치였다기 보다는 정부의 질책과 주문을 받는 시간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전경련이 올해 총회에서는 모처럼 신선한 '아젠다(Agenda)'를 제시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는 기업인의 결의를 모아 선언문 형태로 발표한 것이다. 음성적인 '뒷거래'의 고리를 스스로 차단하겠다는 자정선언이자 더 이상 기업에 출혈을 강요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같은 선언이 나오게 된 바탕에는 지난 4년간 기업들이 뼈아픈 구조조정을 통해 어렵게 마련한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정치자금이란 형태로 쉽게 빠져나가는 기업자금도 따지고 보면 근로자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번 선언을 선거철을 맞아 다른 많은 이익단체들처럼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기회주의적인 공세로 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진념 부총리도 이날 "기업들이 정치자금의 굴레에서 해방돼 경영 본연의 업무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전경련이 불혹(不惑)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출발을 위해 스스로를 시험대에 세웠다.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이심기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