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져버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것은 외환위기의 고통이 온 나라를 짓누르고 있던 지난 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5일 정부 세종로 청사. 김종필 총리(현 자민련 총재)는 이규성 재경, 박태영 산자, 신낙균 문화, 이정무 건설, 김선길 해양, 김성훈 농림부 장관,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대외경제조정위원회 회의를 주재한다. 안건은 외국과의 FTA 추진 계획을 비롯 한.미 투자협정 추진 현황,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동향 등. 대외경제조정위원회는 수출 증대와 외국인 투자유치 등의 대외경제정책을 종합적으로 심의, 조정하기 위해 그해 4월 설치된 기구다. 다음은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인사의 회고. "한덕수 본부장(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각료들이 칠레와의 FTA 추진에 반대했습니다. 이규성 재경부 장관은 '쓸 데 없는 것을 추진한다'며 한 본부장을 직접 나무랐던 걸로 기억합니다. 박태영 장관과 김성훈 장관도 수출 확대 실익은 적고 농업 피해는 커질 수 있다며 강한 어조로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거론되면서 토론은 때이른 결론으로 치달아갔다. 이어지는 증언. "한 본부장은 그러나 청와대에 이미 보고된 사안이라며 지속적인 관철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총리가 청와대 보고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해 농업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은 관련부처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조건 아래 통과되도록 의견을 조정했지요"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정부는 칠레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과 FTA 체결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한.칠레 FTA 협상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이날 회의로부터 불과 12일 뒤인 11월17일 한.칠레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양국간 FTA 추진을 잠정 합의한다. 대통령 해외순방을 위해 다급히 준비된 메뉴였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 물론 '한.칠레 FTA 체결'이라는 아이디어가 98년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남미공동시장(MERCOSUR) 등 전체 미주 대륙에 무역자유화 물결이 몰아닥친 지난 95년 강신성 주칠레대사가 외교부에 한.칠레 FTA 필요성을 공식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정부의 검토 과정에서 실익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폐기됐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각료들이 실익이 없다고 비판한 한.칠레 FTA 협상이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98년 말 당시는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해가던 시기입니다. 대외 신인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만큼 대통령이 직접 장관들에게 개방된 국가 이미지를 부각시키도록 주문하던 때였지요. 한.칠레 FTA 추진론자들은 이런 배경에서 청와대를 움직일 수 있었던 겁니다"(정부 고위 관계자) 3년여를 끌고 있는 한.칠레 FTA 협상은 출발부터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FTA 체결에 따른 산업 분야별 이해득실 검토에서부터 농민 등 이해 당사자들과의 공감대 형성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준비되지 못했던 것이다. '개방 국가 이미지'라는 허상과 명분이 현실론을 압도하면서 생긴 피할 수 없는 귀결이기도 하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