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9:59
수정2006.04.02 10:00
프랑스 작가 막상스 페르민(34)의 소설 '눈'(조광희 옮김,현대문학북스)은 제목처럼 투명한 색채를 띤 작품이다.
마치 한 편의 산문시 같다.
분량도 1백28쪽으로 웬만한 시집과 비슷하다.
그러나 행간의 여운은 길고 향기롭다.
소설의 시작과 끝점을 팽팽한 줄로 연결하는 축은 하이쿠와 눈.일본 전통 시가인 하이쿠는 열일곱 음절로 이뤄진 석줄 짜리의 짧은 서정시.구름에서 떨어져내린 백색의 가벼운 눈송이.이 둘은 '하늘의 문,신의 손에서 떨어져내리는 시'다.
19세기말 일본.하이쿠의 절창을 꿈꾸는 열일곱살 시인 유코는 눈의 순백미에 집착하다 당대 제일의 스승 소세키로부터 색채와 음악의 균형을 체득한다.
스승과 그 사이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파리 출신의 줄타기 곡예사 네에쥬(눈)가 있다.
젊은 아내 네에쥬를 잃은 슬픔이 소세키를 실명케 하고 마침내 예술의 명인으로 거듭나게 한 것처럼 유코는 엄마 네에쥬를 닮은 그 딸의 전율할 듯한 아름다움을 통해 위대한 시의 경지에 도달한다.
길고 복잡한 만연체 위주의 프랑스 문단에서 막상스 페르민의 단문은 긴축과 밀도의 울림에서 단연 돋보인다.
출간하지 않은 일곱권의 습작에 들인 공이 새로운 문체미학으로 거듭나게 했을까.
색채 3부작을 쓰고 싶다고 했던 그는 후속작 '검은 바이올린'에서 흑백의 아름다움,'꿀벌 치는 사람'에서 황금색의 매혹적인 세계를 펼쳐보이며 프랑스에 페르민 붐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