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협상전선] (7) '韓-칠레 FTA'..사전검토 없이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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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협상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카드도 없고... 꼬일대로 꼬인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정부의 협상 관계자는 뾰족한 해결책 없이 표류하고 있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를 앞두고 이렇게 푸념했다.
그는 "국가 체면이 걸린 협상이라 처음에 잘못 채운 단추를 바로잡는 것도 쉽지 않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문제는 이 잘못 채운 첫 단추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98년 11월 중순.
한국과 칠레 양국 대통령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양국간 FTA를 추진키로 했다.
이어 99년 9월에 열린 뉴질랜드 APEC 정상회의에서 협상 개시에 공식 합의했고 그해 12월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1차 협상이 열렸다.
그러나 한.칠레 FTA 협상은 지금껏 3년이 넘도록 양측의 팽팽한 의견 대립 속에 원점을 맴돌고 있다.
공식 협상은 2000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4차 협상을 끝으로 중단됐다.
품목별 관세화 일정을 담은 양허안을 교환한 뒤 이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3월 5차 협상을 열기로 했으나 지금껏 열리지 않고 있다.
협상은 이미 실패로 끝난 상태지만 '국가 체면'을 우려한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이름만 살아있는 상황.
오는 2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1년 만에 협상이 재개되지만 전도가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역시 농민단체들은 반대성명을 내면서 일전을 불사할 태세고 농림부 또한 아무런 전향적인 협상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칠레 FTA 협상이 난관에 부딪힌 직접적인 이유는 FTA 체결로 칠레산 포도 배 사과 등 농산물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면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농가와 농민단체의 강한 반발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농민 저항을 고려해 칠레 정부에 FTA를 맺더라도 사과 배 포도 복숭아 등의 관세화를 뒤로 늦춰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칠레는 타이어 냉장고 세탁기 등의 공산품 관세화를 유예 또는 제외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하나둘씩 알맹이는 다 빠져 버리고 껍데기만 남게 된 형국이다.
정부는 지금도 어떻게든 FTA 협상을 타결짓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협상이 결렬되면 당장 '개방형 통상국가'를 표방하는 한국의 대외 신용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FTA 협상이 타결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가운데 사실상 한국만이 단 한 건의 FTA도 갖지 못한 유일한 국가로 전락한 점도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협상의 조건이 풀리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정부의 체계적이지 못한 협상 준비와 농업의 낮은 경쟁력이 FTA 협상을 표류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두 가지 사안 모두가 사실은 정부의 정책 실패에 원인이 있다"며 "협상에서 성공하려면 내부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정부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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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수요일자에 게재되는 '흔들리는 협상전선'이 현투증권-AIG컨소시엄 외자유치에 이어 이번주부터는 한.칠레간 FTA(자유무역협정)와 관련된 비화와 문제점 등 통상현안으로 넘어갑니다.
한.중 마늘협상, 한.일 어업협상의 뒷얘기들도 다룰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