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시도때도 없이 계속돼온 기업구조 조정은 수많은 직장인들을 회사 밖으로 밀어냈다. 가장의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고 경기침체로 가계 소득이 줄어들면서 사업에 나서는 주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주부 창업 열기가 일고 있는 원인은 외환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의 사회진출 욕구도 커진 탓도 있다. 회사에 새로 입사원서를 낼 엄두는 나지 않아도 내 사업을 하려는 주부들은 많다. 잘 되면 "사장님" 소리를 듣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 김태희(32) 홈하비 영등포점 대표,유연숙(44) 한스비빔밥 목동점 대표,김진순(45) 해리피아 거여역점 대표 등 전업 주부에서 사장님으로 변신한 세사람의 얘기다. (각각 한 말을 무기명에 무순으로 정리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죠 -어려운 시절도 많았다. 하루 1백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릴 정도로 사업이 잘 됐지만 IMF(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로 접어들면서 계속 내리막길이었다(세사람 중엔 IMF이전에 사업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선 보증이 잘못됐다. 결국 10억원이 넘던 재산을 집 한채도 못건지고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그 때의 참담함이란... -돐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떼어놓고 점포에 나와있을 땐 아이가 보고 싶어 몇시간씩 혼자서 운 적도 있다. 아이가 마음에 걸리는데 일을 고집하는 이유는 "완전연소(完全燃燒)"를 위해서다. 나 자신을 모두 불태워 존재 자체가 없어질 때까지 열심히 일해보고 싶다. 주변 사람들 모두 힘든 상황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집에서 살림만 하면 뒤쳐질 것만 같다는 압박감도 있다. -"의욕만 앞세워서 되느냐" "집에서 아이나 키우라"는 주변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상황이 그러니 몸이 피곤해도 아야 소리 한번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시댁 식구들 생일잔치나 결혼식에 참석 못하기는 부지기수.그 다음 수순은 시댁식구들로부터 눈총받고 온 남편과 한바탕 부부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쉬는 것 잊은지 오래 -하루 10시간이 넘게 손님들과 부대끼다 집으로 돌아가면 한밤중.1년 3백65일 매일 점포를 열다보니 주말에도 한가하게 가족들 손붙잡고 놀이동산에 놀러 갈 여유도 없다. 고작 가족들과 함께 가는 곳은 까르푸 이마트 마그넷 같은 대형 할인점.심야에도 영업하는 할인점이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다. -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여느 주부들처럼 가족들에게 세심한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게 늘 미안하다. 아이들은 늘 엄마없는 빈 집에 들어와야 했고 남편도 따뜻한 밥 한끼 얻어먹기 힘들다. 특히 아이들이 어려서는 엄마가 곁에 없다고 투정부려 맘고생도 많이 했다. -미욱스럽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이제는 큰 딸아이는 저녁시간 홀 서빙이나 배달 아르바이트를 도맡아 해준다. 엄마가 자랑스럽다며 저도 경영학과에 진학해 엄마처럼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 좀이 쑤셔 -때되면 늘 찾아오는 제사나 설,추석 등 명절엔 남편이 대신 부쳐준 전을 들고 큰댁을 방문한다. 시부모님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도 "바쁜데 어려운 발걸음했다"며 반갑게 맞아준다. -집안일에 소홀한 데 나머지 개인 생활은 말할 것도 없다. 친구들과 커피 한잔 마시고 같이 사우나하는 것은 고사하고 전화로 한가하게 수다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해 본지가 오래다. 어쩌다 전업주부로 집에 있으면서 아기자기하게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데 열심인 친구와 통화라도 하면 "나도 그냥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 살 것을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잠깐뿐.천성이 일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집에만 있으면 좀이 쑤신다. 아무래도 밖에서 일할 팔자를 타고 난 것 같다. #동네에서는 나도 유지 -여자라서 일하는 데 장점도 있다. 무뚝뚝한 남자들과 달리 손님들에게 친근함과 상냥함으로 어필할 수 있다. 고객을 물건 팔아주는 "돈"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장사꾼 때가 묻지 않았다는 칭찬을 듣는 것도 그래서다. 그만큼 단골 손님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젊은 손님들에게는 가끔 연애.인생상담까지 해 준다. 나를 "언니"또는 "엄마"라고 부르는 손님도 있다. 가게를 옮겼는데도 먼 길을 마다않고 얼굴보러 찾아오는 열성 고객도 많다. 물론 친구들도 무더기로 데려와 매출을 올리는 데 한 몫 해준다. 한 곳에서 오래 사업하다보니 길거리에 나가면 유지(有志)대접을 받는다. 경찰관 아저씨나 동사무소 직원들도 사장님 대우를 해준다. -이젠 "사장님 예뻐졌네요"라는 종업원들의 놀림에 "응,바람났어..."라고 농담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지금은 친구들로부터 빚을 내 사업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돈이 모이면 장애인 복지회관을 세워 사회에을聆?꿈도 갖고 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 .............................................................. [ 여사장 3인의 사업현황 ] 김진순(45) 해리피아 거여역점 대표 커피숍 운영경험. 외환위기로 손님이 끊겨 업종 전환 모색. 작년 6월 이벤트 주류 전문점 해리피아를 시작. 총투자비는 1억5천만원.월평균 매출액 3천3백만원에 순이익은 1천20만원이다. (02)2637-9877 김태희(32) 홈하비 영등포점 대표 의류회사에 다니다 결혼후 사직. 출산후 친구의 권유로 지난 98년 십자수 전문점을 시작. 총투자비는 1억원.월평균 3천만원 매출에 순이익은 1천만원. (02)403-5900 유연숙(44) 한스비빔밥 목동점 대표 2급 정비사 자격증 소지자. 카센터,여성의류전문점 경영. 작년부터 비빔밥 패스트푸드점 운영. 총투자비는 3억2천만원.월평균 매출액 1천8백만원에 순이익은 6백만원. (02)2648-8222 (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