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은행주식을 담보로 해외에서 교환사채(일명 오페라본드)를 발행했다. 또한 서울은행을 인수하기 위한 컨소시엄이 동부그룹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국유화됐던 은행의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 현행 은행법 개정안대로라면 기업 컨소시엄을 통한 민영화는 산업자본의 은행지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으므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는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려고 현재 4%로 제한된 은행 주식의 동일인 소유한도를 완화키로 했다. 단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산업자본의 소유한도는 4%로 유지된다. 그런데 기업 컨소시엄 방식을 택하면 이 규제를 우회한 산업자본의 은행지배가 가능해진다. 개별 기업의 은행주식 소유지분은 4% 이하라도 컨소시엄 전체로는 대주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소유한도 규제를 없애는 대신 감시.감독을 강화하면 사금고화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당장 은행을 살만한 자금력을 가진 곳이 재벌밖에 없으니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공적자금도 빨리 회수하고 은행도 주인을 찾아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공적자금 회수가 급해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방화벽은 평소엔 거추장스러워도 극한 상황에서 그 빛을 발휘한다. 대주주가 부도상황에 직면하면 은행자금을 전용할 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이런 불법 전용은 일순간에 일어나므로 금융감독만으로 사전에 방지하기 어렵다. 대우, 현대 사태가 좋은 예다. 외환위기 직후 자금난에 빠진 대우, 현대는 계열 금융사를 동원해 대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그 결과 98.99년중에 부실화된 회사채중 대우계열사가 발행한 채권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대기업 부실로 나라 전체가 시스템 붕괴 위기로 몰렸던 사실을 생각할 때 산업.금융자본의 분리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재벌을 제외하면 마땅한 대주주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금융전업가가 나타나면 좋겠지만 민영화의 장점을 얻기 위해 반드시 대주주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소유주 경영과 전문경영인 경영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인가는 이론적.실증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문제다. 외환위기 이전 은행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실패한 까닭은 대주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관치를 막을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소액주주운동, 집단소송제, 기관투자가의 기업감시 등 자본시장을 통한 경영감시 체제가 개선되고 있다. 따라서 섣불리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기 보다 소유가 분산되더라도 정부보유 주식을 일반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점진적으로 정부 보유 은행주를 매각하되 당분간 매각되지 않은 정부 보유지분에 대해서 의결권을 제한한다면 민영화가 완결될 때까지 관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대주주가 나타날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정부보유 주식의 시장 매각을 추진하면 외국에 매각하는 것에 비해 헐값 시비도 덜할 것이다. 가격만 맞으면 예상외로 은행전업가를 희망하는 산업자본가도 생길 수 있다. 단 이 과정에서 규제를 우회한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는 제도 보완을 통해 막아야 한다. < 서울대 경제학부 부교수.한국채권연구원 이사 rhee5@plaza.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