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통신 대란'이 발생했다. 가입자가 85만명에 이르는 AT&T 브로드밴드의 케이블 인터넷서비스가 지난 1일(현지시간)부터 중단됐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서둘러 대체 수단을 마련했지만,여전히 수십만명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익사이트앳홈이란 회사가 AT&T에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중단함으로써 생겼다. 미국에서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는 케이블망 보유회사와 인터넷 접속서비스 회사의 협력체제를 통해 제공된다. AT&T처럼 케이블망을 갖춘 회사는 가입자와 인터넷망을 연결하는 통신 네트워크를 제공하고,익사이트앳홈 같은 회사는 인터넷 접속 등을 제공해 가입자가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익사이트앳홈은 실적이 부진하자 지난 9월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한편 케이블 회사에 사용료를 올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케이블 회사들이 이 요구를 거부해 익사이트앳홈은 법원에 이들 회사와의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신청했다. 법원이 계약만료일 직전에 계약을 중단해도 좋다고 허가하자 익사이트앳홈은 곧바로 계약 종료 조치,즉 인터넷 접속 중단을 단행한 것이다. '설마 서비스를 끊겠느냐'며 느긋해하던 케이블 회사들 가운데 콕스 콤캐스트 등은 서둘러 익사이트앳홈의 요구를 수용,계약을 새로 맺고 서비스에 나섰다. 그러나 익사이트앳홈 주식의 3분의 1 가량을 소유하고 있는 AT&T 측은 강수를 뒀다. 이 회사와의 계약을 연장하는 대신 독자적인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힘겨루기'에 나선 것이다. 익사이트앳홈을 통해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하는 케이블 인터넷 가입자는 3백70만명에 이른다. 미국 전체 고속인터넷 이용자의 35% 정도다. 익사이트앳홈이 이들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엄청난 파문이 일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법원은 '계약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계약 중단을 허용했으며,익사이트앳홈은 그 판결을 근거로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들이야말로 이용자의 불편을 외면하고,법과 계약이라는 원칙을 교조적으로 따르는 또다른 '원리주의자'들이 아닐까. 실리콘밸리=정건수 특파원 ks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