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제일은행간 합병 추진 사실이 밝혀지자 신한 조흥 외환 한미 등 다른 시중 은행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이들 은행은 합병을 서둘지 않으면 군소은행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 추가 합병을 암중 모색중이다. 특히 앞으로 규모를 더 키워야 하는 신한과 한미은행은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또 서울은행 인수를 원하고 있는 조흥 외환은행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하나와 제일은행의 합병 추진이 은행권 '제2 빅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셈이다. 이에 따라 금년말을 전후해 금융계에선 생존을 위한 은행간 합종연횡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 서울은행 노리는 '조흥' =조흥은행은 일단 정부가 매각키로 한 서울은행을 인수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현재 주가가 액면가(5천원)를 밑돌고 있어 당장 우량은행과의 합병은 어렵기 때문이다. 위성복 행장은 22일 "여러 상황을 감안할때 서울은행과 합병하는게 바람직하다"며 "서울은행 인수를 추진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위 행장은 "내년중 지주회사를 설립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라며 "그 경우 서울은행을 사무수탁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자회사로 둘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일부에선 조흥이 서울을 인수하면 공적자금 회수에 불리하다는 견해가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연말까지 경영개선목표를 달성하고 주가가 액면가를 넘으면 해외 GDR(주식예탁증서)를 발행, 공적자금을 갚을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 '외환'도 서울에 관심 =외환은행도 내심 서울은행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은행은 하이닉스반도체 처리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자 서울은행 인수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한 관계자는 "서울은행이 추가 부실요인만 없다면 인수할 의사가 있다"며 "코메르츠방크 등 외국자본이 들어와 있는 외환이 서울은행을 인수하는게 '모양새'도 좋다"고 말했다. 외환은 정부와 약속한 금년 경영개선계획을 달성하면 내년초 서울은행 합병을 본격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 느긋한 '신한' =지난 9월 신한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킨 신한은행은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입장이다.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틀을 갖춰 이미 통합 국민은행, 우리금융지주회사와 함께 3강(强) 구도를 형성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호 행장은 "현재로선 합병을 서둘지 않고 있다"며 "연내에 제주은행의 자회사 편입 등 지주회사 정비를 완료하는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체적으로도 매년 자산규모가 10조원 이상씩 늘고 있어 대형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하나 제일은행의 합병이 성사될 경우 신한은행도 마냥 '독야청청'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게 금융계 시각이다. 두 은행이 합병하면 자산규모가 78조원을 넘어 신한은행(58조원)을 앞서는 대형은행이 되기 때문. 신한은행은 국민은행 우리금융지주회사와 함께 국내 3위권은 유지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은행권 재편흐름을 주시하며 다른 은행과의 합병을 통한 대형화도 추진할 것으로 점쳐진다. ◇ '한미'는 암중모색중 =한미은행은 '당분간 내부 체질강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 은행은 지난해말 하나은행과 합병을 추진했다가 대주주인 미국계 칼라일펀드의 반대로 무산된 경험을 갖고 있다. 하영구 행장은 "경영전략 차원에서 합병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로선 합병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산규모가 34조원으로 덩치가 작은 한미은행이 계속 '홀로서기'를 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미은행도 내부적으론 다양한 짝짓기 시나리오에 대해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