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대형 에너지업체인 엔론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을때 경쟁사인 다이너지의 찰스 왓슨(51) 최고경영자(CEO)는 사태추이를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24일 오랜 친구이자 엔론의 회장 겸 CEO인 케네스 레이에게 전화를 걸어 도울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레이 회장은 즉각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엔론 주가가 계속 폭락하고 자금압박이 가중되면서 갈 길이 점차 명확해졌다. 회사를 파는 것 뿐이었다. 이틀 후 레이는 왓슨을 집으로 초대해 조찬을 함께 하며 협상을 시작했다. 다음날 그들은 대략적인 수준의 인수합병에 합의했고 그날 오후 10시쯤 은행 투자자들을 소집했다. 11월9일 다이너지는 1백억달러에 엔론을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1백30억달러의 부채도 함께 인수하는 조건이었다. 엔론은 다이너지보다 덩치가 네 배나 큰 회사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이너지가 엔론의 재무상태 개선을 위해 즉시 15억달러를 투입,신용도 하락을 막아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돈은 다이너지의 주식 26%를 소유하고 있는 셰브론텍사코가 대기로 했다. 이같은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난해 1천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미국내 일곱번째 대형회사로 꼽힌 엔론은 파산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인수발표 당시 왓슨 CEO는 한번도 엔론 인수라는 거대한 꿈을 꿔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왓슨은 일생일대의 가장 위험한 투자를 한 셈이다. 합병후 다이너지는 연간 2천억달러 이상의 매출에 자산규모가 9백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에너지업체로 변신한다. 전력공급량이 2만2천㎿를 상회하며 파이프라인 길이만도 4만㎞가 넘는다. 6%인 미국내 시장점유율은 20∼25%로 높아진다. 엔론 주가가 지난해 8월 90달러선에서 현재 9달러밑으로 폭락한 것은 엔론을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이너지가 엔론인수 없이 엔론과 같은 에너지 운용능력을 갖추는 데는 수년이 걸렸을 것이다. 엔론의 위험관리 시스템은 업계 최고수준이다. 왓슨은 엔론이 주력분야 붕괴가 아니라 자신감 상실에 따라 파산위기에 처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엔론을 정밀 진단한 결과 이 회사가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최근 엔론의 회계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회사가 그동안 발표했던 수익규모에도 의혹이 불거졌다. 엔론은 최근 1997년 이후 지금까지의 총순익을 5억9천1백만달러로 축소 조정했다. 이는 당초 발표한 순익의 20%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합병에 대한 걸림돌은 많다. 우선 미국정부가 에너지업계의 집중화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 왓슨 CEO에게는 두 회사의 서로 다른 문화를 융합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엔론은 치열한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는 반면 다이너지는 동료애를 중시한다. 다이너지는 항상 엔론을 추종했던 회사였다. 엔론에 가려 빛을 크게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왓슨이 이끌고 있는 '다이너지호'는 다른 어떤 회사보다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정리=국제부 inter@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