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閑談] (17) '석주 스님(칠보사 조실)'..번뇌는 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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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서울 삼청동길이 샛노란 은행잎으로 덮였다.
삼청터널로 향하는 길 왼편 골목을 조금 오르자 스님 한 분이 좁은 골목길의 낙엽을 쓸어내고 있다.
삼청동 칠보사 앞이다.
번듯한 일주문도 없는 칠보사 경내에 들어서자 마당엔 비질 자국이 가지런하다.
속진(俗塵)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새삼 가다듬게 한다.
건물이라곤 대웅전과 종각,요사채 2개동 뿐이고 "큰법당""종각"이라는 한글 현판과 한글 주련이 특이하다.
'둥글고 가득한 지혜,캄캄한 번뇌 없애 버리고,온갖 것 두루 두루 비치며,모든 중생들 안락케 하는,여래의 한량없는 그 모습,어쩌다 이 세상 오시나니'
이 절 조실이며 조계종 원로인 석주(昔珠.92) 스님이 30여년 전에 직접 쓴 글씨다.
석주 스님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5세때 서울 선학원에서 남전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원로 중의 원로다.
6년간의 행자생활 끝에 계를 받아 범어사 강원과 오대산 상원사,금강산 마하연,묘향산 보현사,덕숭산 수덕사 등을 거치며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 참선정진했다.
이와 함께 역경과 포교,복지사업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요사채 2층에서 노장(老長)을 만났다.
인사를 하고 명함을 내밀자 안경도 끼지 않은 채 잔글씨를 본다.
신문도 그냥 읽을 정도라고 한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터라 다소 덤덤하던 노장은 역경사업 등 한글사랑을 말머리로 꺼내자 반색하며 설명해준다.
"내가 출가했을 땐 우리말로 된 경전이 거의 없었어요.
신도들이 읽을만한 책은 더 귀했고.광복 전후 한글학회에서 하는 강습회에서 강의를 들으며 대장경을 꼭 번역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석주 스님이 본격적인 역경에 나선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당시 선학원에서 불교사전을 출판했던 운허(1892∼1980) 스님과 함께 열반경 법화경 유마경 육조단경 현우경 선가귀감 등을 번역출판했고 부모은중경 목련경 우란분경은 직접 번역했다.
또 지난 64년 동국역경원 설립 이후에는 운허 스님과 함께 한글대장경 편찬사업에 착수,지난 9월 3백18권의 한글대장경을 무려 37년 만에 완간했다.
"감회가 남달랐지요.
운허 스님이 시작해서 제자인 월운 스님이 마무리했는데,두 분은 우리나라 역경사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특히 운허 스님의 원력(願力)이 컸어요"
동국역경원 이사장까지 지냈지만 노장은 끝내 자신의 공은 내세우지 않았다.
출가 이후 몸에 밴 겸손이요 하심(下心·자기를 낮춤)이다.
행자 시절,은사인 남전 스님이 꼭두새벽부터 잠자리에 들때까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킨 것이 그런 하심 공부의 시작이었다고 노장은 설명한다.
"마음에 틈이 생기면 쓸 데 없는 생각이 끼어들어 사람을 게으르게 하고,마음에 때가 묻게 마련이라고 남전 스님은 말씀하셨지요"
노장은 "우리의 본 마음은 모두 부처님"이라며 "경전을 이정표 삼아 부처님의 경지에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을 강조하다보니 경을 홀대하는 측면이 있지만 경전이 부처의 길에 이르는 이정표같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팔만사천가지 번뇌가 있다고 해요.
번뇌란 번요뇌란(煩擾惱亂)으로서 마음을 흔들어서 어지럽게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때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또한 객진번뇌(客塵煩惱)라,잠시 왔다가 언젠가는 사라지는 손님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번뇌만 털어 내면 본 마음이 나타나고 본래 가지고 있는 부처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노장은 마음을 거울에 비유한다.
깨끗한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만 먼지가 두껍게 앉으면 사물을 비추는 힘이 줄게 된다.
그러나 먼지를 깨끗이 털어내면 다시 이전처럼 모든 것을 비추게 된다.
번뇌의 구름만 걷어내면 감춰진 자기 본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잘 살려면 우선 부모를 잘 모셔야 해요.
부처님도 부모은중경에서 부모를 '집에 있는 부처님'같이 잘 모시라고 했어요.
또 복을 심고 짓는 8가지 복전(福田)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복전이 제일 크고 좋다고도 했지요"
노장은 또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常不輕) 보살의 얘기를 들려주면서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상불경 보살은 이름 그대로 항상 남을 가볍게 보지 않고 존경해 보살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걸림이 없는 선필(禪筆)로도 유명한 노장이 '霜松潔操 水月虛襟(상송결조 수월허금·서리와 소나무같이 지조를 깨끗이 가지고,물에 잠긴 달같이 마음을 비운다)'이라는 글귀를 자주 써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입견이 있으면 남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수월(水月)과 같이 마음을 열고,속을 비워 놓고 사람을 대해야지.또 사람이 지조가 있어야지 너무 변절하면 사람 취급을 못받아요.
특히 정치인들은 이 말을 명심해야 해요"
지난 96년 백두산 정상에 올랐던 노장은 최근 젊은 스님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대산 적멸보궁에 다녀왔다.
노장은 생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 위해 법당 마당에 내려 선 노장은 여전히 꼿꼿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