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4시30분께 서울 창신2동 중부 일일취업센터 앞.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인데도 삼거리 골목길은 벌써 가방을 든 중년의 점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늦가을 쌀쌀한 새벽 날씨에 이들의 몸은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지만 표정이나 말투는 대체로 밝아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들은 속칭 '오야지'라고 불리는 중간 책임자들이 나타나면서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씨''박씨'등으로 호명된 이들은 '예'하는 대답과 함께 담뱃불을 급히 부벼 끄고는 좀 전에 나타나 대기중이던 승합차에 올라 탔다. 수십대의 차량이 들락거리며 4∼8명씩 태워가는가 싶더니 3백여명의 일꾼들이 금세 썰물 빠지듯 사라진다. 30분이나 걸렸을까. "요새 같으면야 세상에 뭐가 부럽겠어.몸이 안따라줘서 그렇지 한달 내내 일감이 남아 돌아" 이날 천안에 있는 다가구주택 공사 목공일을 얻었다는 경력 15년의 건축목수 김민석씨(43·가명)가 차에 오르며 기분좋게 던진 한마디다. 휑하니 비워진 취업센터 사무실에는 이후에도 "일손 좀 보내달라"는 전화가 계속 걸려왔고 그때마다 이영종 고용담당관은 "사람이 없다"며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이 담당관은 "불과 몇달전만 해도 오전 6시가 넘도록 태반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초조해했는데 요즘엔 5시만 돼도 일꾼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인력들이 물을 만났다. 통상 이맘 때는 비수기여서 일감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이번 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아파트 건설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건축목공 철근공 타일공 등을 중심으로 일용근로자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으로부터 공사를 수주받은 하도급 업체들이 일손을 찾지 못해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을 정도다. 하도급 업체인 H사의 한 관계자는 "공사 현장마다 50명 안팎의 기능공들을 필요로 하는데 올 하반기부터는 절반도 못채우고 있다"며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업체들이 공기를 맞추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다세대주택 공사도 인력난을 부채질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내년부터 다세대주택의 주차장 확보와 일조권,용적률 제한 등 각종 건축규제가 강화되기 때문에 단독주택 소유자들이 미리 허가를 얻고 착공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4∼5개월이면 끝나는 다세대주택 변경 공사를 위해 일용근로자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임금도 올랐다. 올 상반기만 해도 8만∼9만원이던 기능공들의 일당이 요즘 들어서는 12만∼13만원으로 치솟은 데다 일부에서는 17만∼18만원까지 줘가며 인력을 쓰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단순 작업을 하는 일용잡부 일당도 4만5천∼5만원에서 6만∼7만원으로 올랐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인력난이 단기적 인력 수급의 부조화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인력 수요가 급작스럽게 늘어나면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3D업종을 기피하는 청년층 노동력이 건설업계로 흘러들지 않는데 따른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능공의 80%가 40∼50대의 중장년층"이라며 "이들을 계승할 중간인력으로서의 젊은층 기능인력 유입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