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4:41
수정2006.04.02 04:43
"외교에 세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냉정하게 관찰할 것(冷靜觀察),둘째 사안에 따라 진용을 확고히 갖출 것(穩住陣脚),셋째 침착하게 대응할 것(沈着應付) 등이다.
국내 사안을 먼저 마무리지은 후 외교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나친 말을 하지 말아라(不說過頭的話),여지를 남겨라(留有余地)"
덩샤오핑(鄧小平) 어록에 나오는 어구다.
지난 90년대 초 덩이 외교관들에게 말한 내용이다.
그 후 이 말은 중국 외교관들의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됐고, 현실 외교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외교의 국제적 신뢰를 저하시킨 '흑룡강 사형 파문'을 지켜보면서 '덩샤오핑 외교술'을 떠올리게 된다.
중국에 와 있는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덩 어록을 한 번만이라도 봤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안을 냉정하게 관찰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문제다.
'통보 없이 한국인 처형'이라는 보고를 받자마자 언론에 공개부터 한 것이 그렇고,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는 중국측 주장에 대해 확인조차 하지 않고 '통보가 전혀 없었다'고 반박한 것이 그렇다.
여지조차 남겨놓지 않았다.
우리 외교부는 덩의 말대로 국내 사안을 먼저 마무리해야 했다.
최소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통보했다'고 했을 때 사실여부를 확인한 뒤 반박해야 했다.
담당자들은 국내 정치하듯 오리발 먼저 내밀면 될 것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외교는 한나절 사이에 '오리발 외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일은 우리 국민이 중국 감옥에서 인권유린 소지가 있고, 외국인 사형을 즉각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중국의 태도를 따지겠다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문서 분실 문제가 터지면서 본질은 퇴색되게 됐다.
외교적 손실이다.
4일 베이징의 주중 한국대사관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관계자들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입을 닫았다.
그들에게 '덩샤오핑 외교술'의 마지막 부분을 들려주고 싶다.
"서두르지 마라(不要急), 서둘러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也急不得), 냉정,냉정,또 냉정해야 한다(要冷靜,冷靜,再冷靜)"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