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프랑스의 대표적 청량음료 업체 오랑지나가 영국의 야캐드버리 슈웹스로 넘어 갔다. 인기 탄산음료인 오랑지나를 비롯해 어린이 샴페인과 야쿠르트 등 총 4개 브랜드의 매각 가격은 46억 프랑. 이는 지난 1997년 코카콜라가 제시했던 50억 프랑보다 4억프랑이나 낮은 가격이다. 코카콜라는 2년에 걸쳐 오랑지나 인수를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프랑스 공정거래위가 코카콜라의 시장 우월적 지위를 우려해 인수합병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의 결정에는 코카콜라의 시장 독점 우려도 있었지만 자국의 대표적 청량 음료수를 외국기업에 넘기지 않겠다는 국민정서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번에 영국에 넘어갈 때는 그다지 부정적인 시각이 없었다. 최근 2∼3년 사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와 기업들도 세계화의 물결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통 살 뱅상 & 토마스 법률회사의 조현철 변호사는 "프랑스 경제가 어려웠을 때는 외국기업의 프랑스 기업 인수를 자국산업 잠식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경기회복으로 프랑스 기업의 해외투자가 늘면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주식시장의 외국 자본 비율은 1997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말 현재 외국인이 소유한 주식은 총 발행물량의 37.5%에 달한다. 채권 시장도 비슷한 비율이다. 특히 정유업체 토탈피나(65%) 비벤디(53.4%) 알스톰(53%) 소시에테 제네랄(50.8%) 알카텔(50%) 등 주요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상당히 높다. 이는 국제간 인수합병(M&A)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주요 기업을 외국 자본이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덕분에 기업인들의 의식과 관행도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앙트완느 셀리에 프랑스 전경련 회장은 오랫동안 불문율로 지켜져 왔던 최고 경영자의 연봉 비공개 관행을 깨고 자신의 연봉을 밝혔다. 이어 비벤디 쟝마리 메시에 회장과 프랑스 텔레콤의 미 셀 르봉 회장도 자신의 연봉을 공개했다. 파리 1대학의 크리스티앙 드봐시외 교수는 "외자가 필요한 기업으로서는 외국인 주주가 요구하는 경영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는 기업지배구조와 개선과 투명성 증대로 이어져 결국 프랑스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정부는 외자유치 성공국으로 꼽히는 네덜란드 영국 아일랜드를 벤치마킹하는 동시에 프랑스에서 성공한 외국 기업사례를 대외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외국기업 유치 활동도 매우 적극적이다. 이미 진출한 업체들이 인건비가 싼 제3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막는데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지 투자 기업이 생산시설을 늘리거나 사업을 확장할 경우 신규 외국인 업체에 주어지는 조세 및 고용 지원비 등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