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특허의 중요성은 단적으로 말해서 하나의 물질에 대해 특허권을 가지면 그 물질이 관련된 모든 제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있다. 바로 이런 독점력 때문에 선진국은 일찍부터 여기에 눈을 떴으며 시장개방 압력 차원에서 대대적인 공세로 나왔다. 선진국이 제약 바이오 화장품 정밀화학 분야에서 갖는 경쟁력의 원천은 사실 물질특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제도도 미비하거니와 아예 기초적인 기술력마저 결여된 개도국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수세적 입장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금 뉴라운드 출범과 관련해 선진국과 개도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약품 분야에서의 논란도 근본적으로는 물질특허 독점을 이용한 선진국 제약회사들의 횡포에 근원이 있다. 물질특허에 기초한 신약의 독점은 바로 개도국이나 최빈국에서는 품귀와 가격 횡포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이를 다소나마 약화시키기 위한 강제실시권 발동의 완화 등을 개도국은 원하는 것이다. 현재 WTO(세계무역기구)의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TRIPs)협정 준수와 관련된 규정에서 일부 개도국이나 최빈국에 각각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적용한 것도 실은 물질특허에 대한 대항력의 정도와 연관이 있다. 지금 유예 적용을 받고 있는 국가들은 예컨대 필수 의약품의 저가 공급을 위해서라도 몇년 후 종료될 유예기간의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물질특허가 개방된 것은 1987년 7월이다. 당시 제약 농약 등을 비롯 영향권 아래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국내 업계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개방에 대한 우려가 컸고 기술종속 문제도 제기됐다. 한마디로 바이오 제약 정밀화학 등을 뒷받침할 기초 분야가 그만큼 약했던 탓이다. 물론 물질특허가 자극제가 돼 신약 창출이라는 꿈을 품게 만들고 이를 확인해 주는 사례들이 나오게 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특허청 자료를 보면 97년 30.2%에 달했던 내국인 물질특허 출원비중이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바이오가 부각되는 시기에 거꾸로 내국인 특허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외국 기업의 공세가 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위기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약 화학 식품 화장품 농업 등 모든 부문에 걸쳐 기술적 파급을 갖는 바이오산업 등 신산업에 대한 화려한 비전만을 강조하지 말고 그 진정한 해답일 수 있는 물질특허에 주목해 보다 근원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안현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