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고 이병철 삼성 명예회장의 골프 스타일은 전혀 딴판이었다. 이 명예회장은 골프장비를 모두 최고급으로 썼다. 레슨도 유명한 일본프로한테서 제대로 배웠고 평소에도 골프전문 서적을 탐독할 정도로 골프에 심취했다. 반면 정 명예회장은 10년이 지나도록 낡디낡은 골프장비를 사용했다. 골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았고 스코어에 그리 연연하지도 않았다. 단지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장타자로 거리욕심이 대단했고 정직하고 깨끗한 매너로 골프를 즐겼다는 점이다. 지저분하게 스코어를 속이고 동반자들 눈을 피해 볼을 건드리거나 '알까기'를 하는 등 비겁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OB가 나거나 볼이 잘못 맞아도 캐디나 동반자 누구에게도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당시 동반자들은 정 명예회장이 이 명예회장에 대해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고 전한다. 한번은 정 명예회장이 라운드하면서 이 명예회장을 거론한 일화다. "이 명예회장이 5만달러를 주고 잭 니클로스와 라운드를 했다네.18홀을 다 마치고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는데 말이야.니클로스가 딱 한마디만 하더래.'헤드업 하지 말라'고" 이 명예회장이 비싼 돈 투자해서 골프를 배우지만 결과는 그저그렇다는 폄하의 뜻이 담겨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라운드 도중 농담을 하며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어쩌다 버디라도 하면 캐디에게 팁을 주면서 호쾌하게 기분을 냈다. 내기는 거의 안했지만 팁을 주기 위해 몇만원 정도는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골프는 정 명예회장에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그는 "골프는 건강관리에 매우 좋다. 나이가 들면 반드시 골프를 쳐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골프를 하면서부터 건강에 관한 한 자신감이 넘쳤다고 한다. 동반자들에게 "나는 1백20살까지 살 것이다.두고 봐라"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80년대는 재벌들이 독재정권을 도와주며 이른바 '정경유착'을 한다고 학생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던 시절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지인들과 라운드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기업인이 존경을 받지 못한다. 존경은커녕 욕만 안먹어도 좋겠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고금리와 낮은 환율 때문에 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대한 불만도 자주 털어놨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도움말=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