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도입키로 한 집단소송제의 윤곽이 드러났지만 경제계 및 야당의 반대가 워낙 완강해 정부 방안대로 입법화될지는 미지수다. 야당은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와 출자총액제한제 등 기업 규제완화 문제가 충분히 진척되지 않는 한 집단소송제 도입에 협조할 수 없다는 방침을 거듭 천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집단소송제 도입에 따른 이득보다 경영권 제약 등 부작용이 더 많은 만큼 서둘러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집단소송제는 상장 또는 코스닥등록 기업이 주주나 경영진의 불법행위로 인해 소액주주가 피해를 입었을 때 일부 주주의 소송 제기로 나머지 주주들도 똑같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법률 시안에서 집단소송제 도입 이유를 '증권시장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분식 회계, 부실 감사, 허위 공시, 주가 조작, 내부자 거래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해 다수의 소액 투자자가 재산적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반면 김만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집단소송제 도입은 출자총액제한 등을 규정한 공정거래법을 어떻게 개정하는지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집단소송 관련법 개정은 다음 국회는 몰라도 이번 국회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획기적인 기업규제 완화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소액주주권 강화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경련 역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제와 감사위원회제, 집중투표제 등이 정착되기도 전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미국에서도 실패한 제도인데다 소송 남발 등 경제적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라며 기업들의 반대입장을 전했다. 전경련 조사 결과 상장 및 코스닥기업의 83.8%가 소송 남발 및 악의적 소송 증가 등을 이유로 집단소송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 정부 시안이 지나치게 기업에 불리하게 규정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집단소송제를 적용한다고 해 놓고 시세조작, 미공개 정보이용 등의 행위에 대해선 자산규모 제한을 없앤데 대한 저의를 의심하는 눈치다. 규모가 작은 코스닥기업의 시세 조작 등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얘기지만 경제계의 불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한 쪽에선 "집중투표제를 성사시키는 대신 기업규제 완화를 대폭적으로 추진하는, 이른바 정책 교환이 추진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부로선 기업개혁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는 명분을 얻으면서 '획기적인 규제완화 약속'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지난주 기자들과 만나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는 더 강화해야지만 규제완화는 이와 별개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병일.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