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랑 < 대한교과서 대표이사 trwhang@daehane.com > 미국 테러사태 이후 책 판매가 더욱 부진하다. 소비심리 위축이 출판시장에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출판시장이 호황이었던 것은 아니지만,'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왠지 부끄럽게 들리는 요즘이다. 이맘때만 되면 일본 사람들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방송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책 읽는 광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이 대표적인 출판대국의 하나가 된 것은 부러워할 일이다. 경제대국 일본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일본인의 독서열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책과 가까운 쪽은 오히려 우리였다. 경주 석가탑에서 발견된 세계최고(最古) 인쇄본인 무구정광다라니경도 우리 것이요,세계 최초로 금속인쇄술을 사용했던 것도 다름 아닌 우리였다. 인쇄술 뿐만 아니라 종이를 처음으로 발명한 중국인들조차 최고(最高)의 종이로 쳐주었던 것은 우리의 한지(韓紙)였다. 글씨를 쓰던 묵 또한 신라의 '송연묵'에서 조선의 '조선묵'에 이르기까지 그 품질의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회사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제398호인 '월인천강지곡'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5백50년이 넘은 책이지만 워낙 보존상태가 좋아 혹 원본이 아니라 영인본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그만큼 뛰어난 제지술과 인쇄술을 가졌던 우리였다. 종이 묵 인쇄판은 책을 만들기 위한 도구이며 수단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다. 책 만드는 기술에서 가장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일상 생활에서 책과 가까이 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대국 일본에 '제지법'과 '제묵법'을 전파한 사람은 625년 고구려 담징이었다.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밤낮을 잊고 애쓰는 출판인들이 많다. 출판인들의 노력으로 좋은 책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책을 사랑하던 우리의 모습은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대로 가면 자칫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