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을 직업으로 삼는 "킬러"는 흔히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돈,또는 이념을 위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직업이기 때문에 과묵하고 냉혹한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진 감독의 신작 "킬러들의 수다"에 등장하는 킬러들은 침묵보다 수다를 즐기고,죽음의 표적과 사랑에 빠진다.


살인의뢰를 당당하게 거절하거나 반대로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한다.


이들은 인간혐오자라기 보다는 박애주의자에 가깝다.


리더인 신현준,폭탄 전문가 신하균,저격수 정재영,막내이자 내레이터 원빈 등 4명의 킬러들의 애증이 독특한 영화언어로 재치있게 드러난다.


"미움의 언어"는 액션으로,"애정의 언어"들은 웃음으로 포장돼 있다.


유리창을 뚫고 목을 관통하는 총알,섬광처럼 화면을 비추는 대형폭발,관객들의 박수속에 숨지는 배우 등은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시퀀스들이다.


킬러들은 이런 행위들을 통해 의뢰인들의 "소원"을 풀어준다.


증오의 감정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킬러란 직업도 영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슈퍼돼지 종자를 탈취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의 소동을 그린 장감독의 전작 "간첩 리철진" 처럼 이 작품도 세태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인 셈이다.


액션은 전작에 비해 화려해졌고 캐릭터들은 더욱 희화화됐다.


이들은 명색이 "킬러"인데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나누고,TV앞에 나란히 붙어 앉아 여자앵커를 넋을 잃고 쳐다본다.


자신이 죽여야하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 블루스를 함께 추거나 체험해보지 않은 사랑의 참뜻을 역설하기도 한다.


살인을 청부하는 의뢰인도 선생님을 짝사랑한 여고생,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앵커 등 각양각색이다.


죽도록 사랑했기에 죽이고 싶도록 밉다는게 청부살인 의뢰의 이유다.


살인이 윤리적 저항없이 "화려하고도 매끄럽게" 집행되는 상황등 황당무계한 부분이 적지 않게 발견되지만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그럴듯한" 이야기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웃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주제를 희석시켰다.


폭소를 유발하는 유머는 종종 말장난에 그치고 만다.


검사와 킬러의 대결 장면도 웃음을 자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찰과 사법제도의 난맥상을 부각시키는데는 실패한다.


신현준은 "은행나무침대"에서의 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유연한 성격의 킬러를 그럴듯하게 연기해 낸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소심한 북한병사역을 해냈던 신하균은 "배짱좋은 킬러"와 "사랑의 포로"란 대조적인 성격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12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