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가. 컴퓨터에 의한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체험이 늘어나면서 진짜와 가짜, 픽션과 논픽션의 한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진짜같은 환경이나 상황을 만들어내는(simulate) 가상현실 시스템을 이용하면 조종술을 익히고 수술을 하고, 심지어 특공작전이나 전쟁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모든 걸 오락으로 만들어낸 것이 컴퓨터게임이다. '레인보우6' '테이크 다운'은 테러 진압,'오퍼레이션 플래쉬 포인트'는 걸프전,'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비행 연습을 소재로 한 게임이다. 지금까지 게임의 성패는 주로 전투장면을 얼마나 실감나게 만드느냐에 좌우돼 왔다. 막말로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하게 많이 죽이느냐를 놓고 경쟁했을 정도다. 마우스를 클릭하면 비명소리가 낭자한 건 물론 핏자국도 선명하다. 이번 뉴욕 대참사는 그러나 게임과 현실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게임과 달리 테러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했다. 급기야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와 관련있는 게임의 경우 문제 장면이 삭제되거나 출시가 미뤄진다는 소식이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레드얼럿2' 확장판 '유리(Yuri)의 복수'는 러시아군 유리의 공격으로 세계무역센터가 불타는 장면때문에 내용이 교체되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시리즈 역시 맨해튼의 지형을 너무 상세하게 묘사해 테러범들이 이 게임으로 훈련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산 결과 새 버전에선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테러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 뉴버전 또한 출시가 연기됐다고 한다. 할리우드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유행하던 대형 테러나 액션물 대신 인간문제, 특히 불가항력적 사태에 직면한 사람들의 정신적 공황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게임 쪽에선 이와달리 좀더 다양한 고도의 전투술이 나타나리라는 예측이다. 두고 볼 일이지만 단순히 보다 큰 자극을 위해 만든 게임과 영화 속의 살상 장면이 현실화됐을 때의 끔찍함을 두 눈으로 본 만큼 뭔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