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ody knows." 서울 외환시장이 강력한 외풍에 냄비처럼 들끓으면서 시장참가자들의 혼란이 이같이 표현되고 있다. 테러에 노출된 미국의 감정적 보복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의 불길'이 '한국의 찬바람'으로 이입되면서 시장은 정상적인 논리나 메카니즘에 의한 순항보다는 망망대해에서 험난한 파고를 넘어서야 하는 형편이 됐다. 변수는 이미 열려져 있지만 시장 참가자들 운신의 폭은 크게 좁아졌다. 무엇보다 시장의 눈길이 박힌 곳은 사흘후로 최후통첩을 보낸 미국의 공습과 강도다. 그리고 이에 따른 시장의 반응이다. 냉정을 찾을 것인지, 동의할 것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특히 17일 다시 문을 열기로 한 뉴욕 증시도 관심이다. 달러화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반응은 냉담한 것으로 지난주 말 비춰졌지만 국내 원화의 특수성 또한 감안해야 한다. 불안한 상황에서의 달러화 보유심리가 시장저변을 굳건히 다지고 있는 반면 전 세계적인 달러 약세 조짐은 환율 상승이 한계에 봉착하리란 꼬리표를 쥐어주고 있다. 루머나 뉴스에 과도하게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딜레마다. 이에 따라 위아래 변동성이 큰 '럭비공 장세'가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이번주 환율은 제한적인 상승세에 무게가 실린 가운데 '1,285∼1,305원'의 범위내에서도 상하 5원의 덤을 둘 것으로 보인다. 투기조짐이나 이상 변동에 대한 방어벽을 쳐놓은 외환당국도 시장을 좀 더 신중하게 바라보면서 호흡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 비정상적인 시장 상황 = 지난주 11일 미국의 동시다발 테러 사건 발발 직전 이레 동안 상승 가도를 달리던 환율은 12일 9.70원이 미끄러지면서 1,286.10원으로 마감,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후 이틀동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낙폭을 완전히 만회한 환율은 1,296.30원에 한 주를 닫았다. 특히 14일의 상승을 놓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시아 인접국인 일본의 엔화뿐 아니라 싱가포르, 대만 등의 통화는 강세를 보였으나 원화만이 '나홀로' 약세를 기록했다. 전쟁 발발에 대한 불안감은 '달러를 보유하고 보자'는 심리를 가동시켰다.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정유사를 중심으로 결제수요가 드러난데다 역외매수세, 주가 급락의 영향도 시장을 흔들었다. 테러 사태이후 진행된 전 세계적인 달러화의 약세 분위기에서 '왕따'당한 셈이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전제로 다양한 환율 상승의 이유를 갖다댔고 '냄비'처럼 쉽게 끓고 식는 국내 외환시장의 성격을 되씹었다. ◆ 원화, 정체성 찾기 = 미국 경제의 회복이 뒤로 늦춰질 것이 확실시되면서 달러화는 다른 기축통화에 비해 현저한 약세를 보였지만 주변국 통화로서의 위치인 원화는 성격이 다르다. 전쟁 발발 등의 위험앞에서 자국에서 신뢰감을 잃어버리는 이머징마켓 국가의 통화 공식에 여지없이 대입됐다. 전쟁 발발 여부와 시점, 강도 등은 이번주 환율을 가늠하는 중대한 단서가 됐다. 그러나 지난주 말 117엔대로 급락한 달러/엔으로 인해 환율 하락압력도 다가왔다. 이에 따라 일본과의 수출경쟁력을 대변하는 엔/원 환율은 1,091원선으로 올라 7개월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추가 상승에 부담이 느껴지는 상황. 즉, 불안정상이 확대되면서 달러 수요가 늘어났으나 국제적인 달러 약세가 맞장을 뜨게 된 셈. 그동안 달러매수초과(롱)포지션을 구축한 역외세력이 달러화 약세 분위기에 맞춰 손절매도(스탑로스)에 나설 것인지도 관건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는 태도로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워낙 변수가 다양하게 진행될 수 있어 예측이 어렵다"며 "엔화와 달리 원화는 주변국 통화이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면 엔과 관계없이 달러를 살 수 있는 기화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쟁 발발이라는 시장불안과 불확실성의 증대가 달러보유심리를 한층 강화시킬 것이란 예상. 반면 다른 은행의 딜러는 "달러/엔이 117엔이 뚫리면 차트상으로 114엔까지 단숨에 내려갈 수도 있다"며 "전반적인 달러 약세라면 달러/엔만큼 빠지지 않겠지만 달러/원도 하락할 수밖에 없어 1,280원대에 많이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의 롱마인드가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 ◆ 달러화의 한계 = 달러화 방향 역시 미국의 행동에 달려있다. 지난주 말 달러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 테러쇼크의 여진을 경험하면서 엔화에 대해 한때 116.96엔까지 내려선 끝에 전날보다 1.50엔 내린 117.35엔을 기록했다. 특히 유로/달러는 6개월중 최고치인 92.06센트로 마감했다.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는 혼조양상을 띠면서 17일 재개장 예정인 뉴욕 증시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 말 미국의 8월 산업생산은 악화된 반면 소매판매는 다소貂′杉? 그러나 이번 테러사태로 소비 증가세는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뉴욕 증시도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견해가 주를 이뤄 주요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 선진 7개국 중앙은행은 세계 금융시장의 동요를 막기 위해 저리의 단기자금을 주입키로 하고 1,9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이같은 유동성 공급과 외환시장의 급변에 공동 대처키로 한 것은 향후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전례가 될 전망이다. 달러화 가치는 추가적인 하향 시도가 있지만 공조개입의 분위기가 익어가고 있어 급락하는 양상은 전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전쟁이 나도 유로나 엔화로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달러 약세를 이어가지만 이미 달러/엔이 일부 반영한데다 공조개입으로 추가 하락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 달러 사는 개인 =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달러화는 든든한 안전자산이다. 최근의 상황은 개인들에게 달러보유를 자극하고 있다. '무조건 달러를 가져야 한다는 정서'가 개인심리의 저변에 깔린 것은 아래쪽으로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최근 자산규모가 큰 강남의 VIP고객들이 달러를 많이 사고 있다"며 "그것이 대부분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동지역의 불안 확대 가능성으로 유가가 들먹이자 정유사에서 적극적으로 결제수요에 나서는 것을 비롯, 1,280원을 저점으로 보고 달러 사자(비드)를 댈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은행의 한 딜러는 "삼성의 경우 보유하고 달러를 무조건 홀딩하고 팔지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들었다"며 "환금성 있고 가치를 보전할 수 있는 달러에 대한 집착이 커진 셈"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가수요는 두드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시작되면 달러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가수요를 제한하고 있다. 아울러 외환당국도 이같은 흐름을 잘 읽어 실제적인 투기조짐이 있을 때 구두개입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지난주 비정상적으로 달러 수요가 몰리면서 환율이 오른 것에는 당국의 잘못도 있다"며 "공연히 환투기세력 등의 언급으로 커버수요가 나옴으로써 정상적인 운용에 '긁어부스럼'을 만들어놨다"고 말했다. 공연히 앞서 나선 탓에 시장 불안감을 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