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기업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닷컴을 비꼬는 "자조적 풍자"가 유행하고 있다. 닷컴 기업에서 쫓겨난 사람이나 닷컴 기업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린 사람들이 울화를 달래기 위해 시니컬한 풍자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 아이자파가 내놓은 두루마리 화장지가 대표적이다. 이 휴지의 아랫단에는 아마존닷컴 야후 프라이스라인 등 바닥을 기고 있는 대표적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가 티커처럼 인쇄돼 있다. 티커란 TV 화면 아랫부분이나 전광판을 통해 주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즉 이 화장지에는 닷컴 기업들의 주식이 휴지가 되어버렸으니 밑이나 닦자는 속셈이 담겨 있다. 이 화장지는 이베이에서 한 롤당 9.99달러에 팔리고 있다. 경매에서는 값이 2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아이자파는 이미 5백여롤을 팔았고 수주잔량도 3천롤이 넘는다고 한다. 값이 일반 휴지(4~5달러)보다 훨씬 비싼데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 투자증권회사 모건스탠리는 이 휴지를 사서 고객들에게 사은품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아이자파 관계자는 "주로 인터넷 주식에 투자했다가 망한 사람들이 이 제품을 사간다"고 설명했다. 망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터넷 기업의 주권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경매된 일도 생겼다.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는 시장에서 10센트선을 오르내리는 웹밴(최근 파산)과 닥터쿱의 주권이 1백달러 안팎에 경매됐다. 시장가격의 1천배에 달하는 값에 낙찰된 셈이다. 코즈모닷컴이나 e토이즈와 같이 이미 문을 닫은 회사의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 컵 마우스패드 등도 인기리에 경매되고 있다. "망할놈의 회사"(F---edCompany.com)란 사이트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사이트는 인터넷 경제의 발달과 함께 큰 인기를 끈 실리콘밸리의 잡지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를 패러디한 것. 이 잡지가 인터넷 기업의 성장을 지켜본 반면 이 사이트는 인터넷 기업의 패망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이 사이트에서는 이용자들이 각 기업의 점수를 매기는데 점수가 높을수록 종말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리콘밸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사이트가 상당한 신뢰를 얻으면서 투자 지표의 하나로 활용되기까지 한다. 실리콘밸리 닷컴 기업들에 대한 풍자는 닷컴 붕괴의 터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이들은 자조적 풍자를 통해 고통을 잊으려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정건수 특파원 ks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