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불황은 없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었던 올해지만 상당수의 기업들은 상반기중 창사 이래 최대의 경영실적을 거뒀다. 고통은 따랐지만 꾸준한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이면서 역량을 주력사업에 집중시키고 고수익 제품을 키워낸 것이 결실을 맺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 "저비용 고효율"로 환골탈태한 것이 주효했던 셈이다. 여기에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와 원.달러 환율상승이라는 외부변수는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저금리로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었고 환율상승에 힘입어 자동차 등 수출주력기업들의 수익성은 크게 높아졌다. 성공적인 구조조정과 초저금리, 환율상승의 하모니로 불황을 이겨낸 것이다.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을 기록한 업체들이 대부분 "전통기업"으로 불리는 구경제기업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IT(정보기술)로 대표되는 첨단기술산업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전통기업들의 "뚝심"이 확인된 것은 한국경제의 저력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으로 풀이된다. 주력사업에 집중하라 불황을 넘은 기업들의 성공비결중 하나는 역량의 집중이다. 태평양 LG전선 신세계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핵심.주력 사업만 남기고 저수익 사업분야는 과감히 도려냈다. 태평양은 지난 90년대초 주력(화장품)과 무관한 분야로까지 진출하는 등 "몸집불리기"에 나선 결과 재무구조가 급격히 나빠졌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비핵심사업 매각, 한계사업정리, 유사업종 통폐합 등을 통해 91년 24개였던 계열사수를 8개로 줄였다. 한때 단기차입금으로 유동성 위기를 겨우 넘기는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현재는 "무차입경영"을 하고 있다. LG전선도 핵심사업을 동축케이블에서 수익성이 높은 광케이블로 탈바꿈시킨다는 방침 아래 비수익.비주력 사업을 꾸준히 정리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지난 83년 한국중공업으로부터 인수한 기계사업(군포공장)의 정리였다. 93년부터 구조조정을 통해 흑자를 내는 3개 부문만 남겼다. 현재도 나머지 부문을 매각하기 위해 외국계 회사와 협상중이다. 신세계도 지난 95~96년 주력과 연관성이 적은 종합금융사 상호신용금고 파이낸스사 등을 거느렸다가 과감한 "군살빼기"를 통해 이제는 종합소매기업이라는 "한 우물"에만 전념하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 99년부터 기아중공업 기아포드할부금융 등 7개사를 매각.청산했고 현대모비스는 자동차부품 보수(A/S)에만 전념하기 위해 사업분야를 전면 재배치하는 비즈니스 리스트럭쳐링을 실시했다. 기술력을 확보하라 동국제강은 지속적인 공정개선 작업과 설비 안정화로 생산과 출하량을 급격히 늘린 케이스다. 지난 6월에는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의 제강생산량을 달성했고 7월(10만4천2백79t)에 이를 다시 뛰어넘는 신기록을 세웠다. 건축및 플랜트 관련 자재를 만들던 SJM은 자동차 부품업체로 변신한뒤 제너럴모터스와 포드 등 세계적인 완성차 메이커에 납품하기 위해 이들이 요구하는 국제적인 품질인증인 "QS9000"을 획득,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차종별 특성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자체 설비개발 능력에다 업계에서는 드물게 시뮬레이션 모델링 설비까지 갖췄다. 제약업체인 유한양행과 동아제약의 실적호전도 우수한 신약개발 능력이 뒷받침됐다. 의약분업 실시후 매출이 급증한 것은 결코 행운이나 우연이 아니다. 다른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전문의약품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한건설협회의 시공능력평가에서 4위를 차지한 LG건설도 주택건축 외에 교량 LPG저장기지 도로공사 정유.정제시설 석유화학플랜트 하수처리시설 등 각 분야에서 풍부한 시공능력과 기술력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외부변수를 적극 활용하라 현대자동차 SK텔레콤 한진해운 등은 환율상승과 저금리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환율상승을 수출의 호기로 삼아 적극적인 해외마케팅을 펼치고 저금리를 활용, 회사채를 저리로 차환발행해 금융비용 부담을 크게 낮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 수출비중이 높아 대표적인 환율상승 수혜기업의 하나로 꼽히는 현대차는 7천9백18억원의 경상이익중 2천억원 가량은 환율상승, 8백억원 가량은 저금리의 효과로 분석되고 있다. 이자부담이 따르는 부채가 많은 한진해운은 해운업계의 특성상 환율상승이 오히려 악재지만 저금리효과를 최대화해 반기 영업이익이 창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할 수 있었다.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은 예금 금리인하로 이자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은 늘렸고 여기에 신용카드 부문의 수수료 수익이 급증, 실적을 크게 호전시켰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