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배구조평가원의 교훈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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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부는 최근 증권거래소가 기업지배구조평가원 설립에 대한 재계 등의 반대를 설득하지 못할 경우 이 계획을 백지화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재경부는 기업지배구조 평가와 우수기업 선정 및 사외이사 교육을 주요 업무내용으로 하는 지배구조평가원 설립안을 마련,이르면 9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써 기업지배구조평가원 설립을 둘러싼 '관치증권'의 논란은 종결됐다.
평가원은 재경부가 한국개발연구원과 함께 투신사 및 자산운용사의 의결권행사 실태조사를 토대로 기관투자가 역할 제고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착상(着想)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투신사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필수적인 바,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위한 자문 및 정보제공 차원에서 기업의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평가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99년 9월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약'이 만들어진 후 지배구조에 관한 많은 제도보완이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실질화'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난 4월 초 이코노미스트지는 아시아에서 가장 지배구조가 후진적인 나라로 한국을 지목했다.
따라서 기관투자가의 시장감시 역할 강화를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재경부의 정책방향은 나름대로의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정부산하 증권거래소에 평가기관을 만들어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자문케 하려는 것은,기업주총에 대한 '정부의 관여'를 제도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평가원은 '기업지배구조와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위험한 발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평가원 설립논쟁은 조기에 종결됐지만 다시 한번 '정책신뢰 저하'라는 비용을 지불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정책실패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현실이 이상향과 같지 않다고 해서 현존하는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상향과 비교하는 '니르바나(nirvana) 오류'를 범하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니르바나 오류가 위험한 것은 사회공학적(social engineering) 사고를 통해 현실을 개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끔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하나,실제로는 시장규율을 대신하는 규제규율이 더 불완전할 수도 있다.
둘째, 최적의 지배구조 모델은 결코 정형화될 수 없음을 수용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개별기업에 대한 컨설팅과는 성격이 다르다.
예컨대 특정비율의 사외이사를 선임하고,사외이사 중심의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선험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선점하는 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한경쟁의 21세기에 기업 생존과 번영을 위해 어떤 지배구조가 적합한지 단언할 수 없다.
따라서 최적지배구조에 대해 사전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시장의 생존게임에서 살아 남아 수익을 내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사후적으로 유형화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지배구조를 기업경영과 시장규율의 작용 속에서 기업 스스로 선택하는 내생변수로 인정하는 유연한 정책적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끝으로 경영 투명성 제고에 대한 개념과 범주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업투명성의 요체는 의사결정 과정과 절차보다는,투자자 판단의 준거가 되는 회계와 공시자료의 신뢰성이다.
따라서 경영투명성을 의사결정 구조와 권한배분 구조를 의미하는 기업지배구조에 연계시키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리고 자산운용이 전문인 기관투자가가 기업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기업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는 이익으로 경영성과를 보여야 할 기업의 자율경영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배구조 개선은 인내를 갖고 기업자율과 시장과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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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