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본드(60)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수익을 많이 내는 은행을 경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영국 HSBC은행 회장이 주주들의 비용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본드는 '구두쇠'로 악명이 자자하다. 그는 요즘 들어 런던공항까지 갈 때 오토바이서비스를 이용한다. 택시를 타고가는 것보다 시간이 절약될 뿐 아니라 요금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HSBC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비용 대비 효과를 최대한 높이려는 것이 생활화돼 있다"고 본드는 말한다. HSBC가 진출해 있는 78개 국가의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의 보수적인 전략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HSBC의 이익은 동종업체보다 훨씬 좋게 유지되고 있다. 이 은행은 지난 8일 견실한 상반기 실적을 발표했다. 세전이익은 54억달러로 시장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나 증가했다. 본드의 '구두쇠'전략은 금융산업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투자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HSBC의 주가는 달러 기준으로 올 들어 18%나 떨어졌다. 2·4분기 이익이 급감한 메릴린치나 모건스탠리와 비슷하다. 반면 HSBC와 이익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세계 1위 은행 씨티그룹의 주가는 거의 하락하지 않았다. 본드 회장이 투자자들로부터 존경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애널리스트들은 씨티그룹이 강점을 갖고 있는 보험과 같은 금융서비스를 HSBC가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시장은 씨티그룹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비중을 높이고 있는 투자금융분야에 HSBC가 과연 열망을 가지고 있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까지 HSBC는 변동성이 큰 상품증권 매매사업에서 단지 총수익의 10% 정도를 올리면 된다고 주장해 왔다. 요즘 들어 본드 회장은 이 점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는다. 이는 변화의 신호일까? 시장의 관심이 계속해서 HSBC와 미국 1위 증권회사인 메릴린치의 관계에 쏠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동안 시장에서는 HSBC가 메릴린치를 인수할 것이라는 루머가 강하게 나돌았다. 본드 회장은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메릴린치에 대해 "우리는 서로 깊이 신뢰하고 있다"며 "그러나 상호 존경한다는 것이 하나로 합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메릴린치와의 인수·합병(M&A)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주들이 그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하지 않는 한 본드는 더 기다릴 여유가 있다. 본드는 그동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왔다. 중소규모의 인수를 상당히 많이 해왔고 피인수업체들을 HSBC의 엄격한 수익 위주 문화에 통합시켜 왔다. 특히 유로지역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 CCF를 인수한 것과 대만 그리스 터키 등에서의 성공적인 인수는 본드의 주요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본드 회장이 자산관리나 투자금융분야에서 두드러진 M&A를 이뤄내거나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전략이 계속해서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입증하기까지 시장은 HSBC에 여전히 거리를 둔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