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제조 기업의 협력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유통기업이 제조업체와 힘겨루기를 하던데서 벗어나 상생을 도모하는 '윈-윈'전략 마련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국내외 업체간 치열한 경쟁을 겪고 있는 할인점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협력업체들의 목줄을 쥐고 갑·을 관계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대형 백화점들이 유통시장을 주도하던 시대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현상이다. 상생의 흐름이 거세지면서 그동안 협력업체에 뻣뻣하기 그지없었던 백화점들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콧대높은 까르푸도 드디어 변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할인점이 주도=할인점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삼성테스코는 최근 신라호텔에서 4백여개 상품 공급업체와 대규모 모임을 가졌다. 참석자만 1천명을 웃돌았다. 이 자리에서 삼성테스코는 홈플러스의 중장기 비전을 설명하고 협력업체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구체적인 윈-윈 전략도 발표했다. PB(자체상표)상품 공동개발 확대,테스코의 세계 점포망을 통한 협력업체 상품 수출,물류통합시스템 구축 등이 대표적인 사례. 신세계 이마트도 협력업체와 머리를 맞대고 히트상품을 양산해 내고 있다. 전자업체인 현우맥플러스와 공동기획으로 만들어낸 '씨네마플러스 TV'는 할인점업계 빅히트 상품으로 통한다. 현재 34개 이마트 전 점포 TV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상품 개발뿐만 아니다. 유통·제조기업이 함께 비용절감을 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다. 비용절감으로 가격을 내려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등 3자 모두 이익을 누리자는 취지다. 이마트와 협력업체들에 구축된 웹 EDI(전자문서교환)시스템을 통해서는 상품의 재고·매출·매입 동향이 실시간으로 파악된다. 과잉생산과 불필요한 비용지출이 자연스레 억제되고 있다. 롯데 마그넷도 연말까지 분석계시스템(DWH)을 갖출 예정이다. 고객·상품·영업정보 등을 협력사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백화점도 동참=지난 16일 초복날 롯데백화점은 5백여개 협력업체에 멜론 세트를 보냈다. 오는 11월 창립 기념일에도 선물을 보낼 계획이다. 79년 백화점이 생긴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롯데는 이에앞서 7월초에는 상품본부의 홈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었다. 상품본부는 협력업체와의 거래 및 상담 창구이기 때문.협력업체와 투명하고 공정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신세계는 지난 7월부터 협력업체와 계약을 맺을때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아예 없앴다. 대등한 관계임을 알리려는 의도에서다. 사이버 공간을 통한 '제안의 소리시스템(sos.shinsegae.com)'을 운영,협력회사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외국업체의 변화 움직임=까르푸는 한국 진출 처음으로 내년 1월께 모든 협력업체들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빚어진 협력업체와의 갈등을 완화하고 상생 관계를 모색해 보자는 취지다. 유럽 1위,세계 2위의 유통업체인 까르푸가 한국시장에서 보이고 있는 변신의 몸짓은 유통·제조 협력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