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콜금리를 내린 것은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훨씬 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동성 함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내려야 할 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반증이다. 재정 지출을 10조원 확대하고 세율 인하를 추진하는 등 정부가 펼치고 있는 경기부양 노력에 화답하는 의미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가능한 수단이 총동원되고 있는 셈이다. ◇ 금리인하 배경 =9일 금융통화위원회는 두시간 가량 토론을 벌였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금리인하에 반대한 금통위원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금통위원들이 표결(4대 3) 끝에 간신히 금리를 내린 것과 대조적이다. 6월 산업생산 32개월만에 감소, 7월 수출 20% 급감, 설비투자 감소 지속 등 실물경기 부진이 너무 두드러졌기 때문. 향후 물가가 3%대로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금통위원들의 부담을 덜었다. 한 금통위원은 "실물 위축을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 인하효과 나타날까 =이번 금리인하는 적극적인 경기 진작책이라기보다는 소극적인 경기추락 방지책이라 할 수 있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도 "금리인하가 경기를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있지만 더 이상의 추락을 막는 효과는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오히려 '정부 역할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통위 발표문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와 대기업 구조조정을 지목해 필요성을 강조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금리와 투자 소비 주가 등의 상관관계가 미미해져 통계상 실물경기 회복을 확인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정규영 한은 정책기획국장은 "작년 8월이 경기사이클상 피크(정점)여서 올 7∼9월 생산 수출 등의 실물통계는 여전히 나쁠 것"이라고 말했다. ◇ 저금리 부작용 =한은도 이자 생활자의 고통과 부동산 투기 등 저금리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월세 수익률(연 12% 안팎)이 정기예금 금리를 두배 이상 웃도는 정도여서 상당한 자금 이동이 예상되고 있다. 또 1년만기 정기예금에 1억원을 맡겨도 이자가 월 40만원에도 못미쳐 명퇴자 고령자들의 소득 감소가 불가피하다. 한은은 이같은 부작용을 금리정책으로 풀기 어렵다며 정부의 사회정책으로 풀어줄 것을 강조했다. 소형주택 공급 확대, 부동산 투기 단속에다 비과세저축 신설, 연금제도 강화 등이 한은의 건의 내용. ◇ 유동성 함정은 아니다 =전철환 총재는 "유동성 함정 가능성이 있다면 그 요인은 경기부진 탓이며 통화정책이 무기력해지는 징후는 없다"고 단언했다. 채권 등 금융상품으로의 자금 이동이 빠르고 통화 수요가 금리에 민감하지 않아 유동성 함정의 개념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총통화(M₂) 유통속도가 지난 99년 1.4분기 0.43에서 올 1.4분기 0.32로 급속히 떨어진 상태여서 한은의 고민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