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미국 유통업계의 핫이슈중 하나는 '대형 할인점의 고급향수 판매'였다. 세계 최대 할인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올해초부터 미니어처 사이즈(약 4㎖ 용량)의 디자이너 향수를 판매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향수의 종류는 겔랑의 샬리마,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아쿠아디지오,입생로랑의 오피움 등.향수 중에서도 고가에 속하는 제품들이다. 월마트는 여성용에는 파란 스티커를,남성용에는 은색스티커를 붙이는 등 향수별로 성별을 알려주는 독특한 마케팅 방법으로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했다. 그 결과 향수매출이 전년대비 두자리 숫자 이상 증가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미니어처 향수가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월마트는 최근 정품 사이즈(50㎖)의 향수를 진열하기 시작했으며 그 종류 또한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할인점 물건인 만큼 가격은 백화점보다 10∼20% 싸다. 또 K마트 등의 여느 할인점들도 고급향수 판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할인점의 특성은 누구나 쉽게 물건을 집고 싸게 살 수 있다는 것. 반면 향수는 지금까지 고급 백화점의 가장 목좋은 자리인 1층에서 '우아하게' 팔리던 제품이었다. 이처럼 상반된 성격의 유통과 상품이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그동안 많은 할인점과 슈퍼마켓 등이 꾸준히 고급향수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미지 손실을 우려한 향수메이커들은 저가유통업체와의 거래를 꺼려왔다. 그러나 월마트 정도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저가유통업체라면 어느정도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획기적인 수익증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향수업체들의 계산이 깔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할인점의 대대적인 디자이너 향수판매 정책이 유통업계의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먼저 백화점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상반기 미국유통업계의 실적을 보면 니만마커스같은 백화점들의 판매액은 지난해 대비 5∼6%대 하락한데 비해 월마트 등 할인점은 7%이상 상승했다. 그나마 '할인점은 싸구려,백화점은 고급품'이라는 기존 인식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추락속도가 더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게다가 고급지향의 패션제품들이 할인점 유통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할인점에서도 백화점이나 패션전문점에서 보던 멋진 디자인의 옷과 핸드백을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는 얘기다. 상품구성이 아직 만족할 만한 단계는 못되지만 할인점이 패션관련 업체들의 중요 거래선이 돼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