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0:06
수정2006.04.02 00:08
'황혼이다 어두운/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라고/말하지도 않는다' ('어디로?' 전문)
중견시인 최하림(62)씨의 6번째 시집 '풍경 뒤의 풍경'(문학과 지성사)은 시간과 공간이 조응하는 세계로의 몰입을 형상화한다.
시 '어디로?'에선 황혼과 나무,인간의 욕망이 아무런 갈등없이 제 갈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존재에 충실하지만 다른 존재를 거스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전체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한다.
시인은 자신의 실존과 풍경속의 현실을 냉엄하게 구분하면서도 그것들을 소통시킬 줄 아는 각성된 지성의 소유자다.
시 '빈집'에 등장하는 유리창이 그 증거다.
차단과 투시의 이중성을 본질로 한 유리창은 '나'와 '새'를 떼어놓으면서도 이어주는 매개체다.
'…새들은 은빛가지 위에 앉고/가지 위로 날아 하늘을 무한 공간으로/만들며 해빙기같은 변화의 소리로 울었다/아아 해빙기 같은 소리 들으며/나는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있다/검은 새들이 은빛 가지 위에서 날고/눈이 내리고 달도 별도 멀어져 간다'('빈집' 중)
시인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풍경의 서정을 기쁨과 탄식,황홀과 비탄,몰입과 반성의 이중주로 노래한다.
'돛단배가 나를 보며 아아아아 소리 질렀다 나도 돛단배를 보며 아아아아 소리 질렀다' ('가을의 집'중)
이처럼 시인은 가을 바다 위 돛단배와 혼연일체의 감흥을 경험하지만 시 '손'에서는 '적멸의 소리'를 봉인할 수 없어 안타까워 한다.
또 시 '포플러들아 포플러들아'에선 문명의 침식에 망가지는 환경을 안쓰러워 한다.
그러나 시인의 태도는 시종 담담하다.
삶의 명암을 갈라놓는 담장 위로 쉬지않고 전진하기 위해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