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 소설집 '비오는 날 아침,빠리에서 죽다'(생각하는 백성)가 국내 처음 번역 출간됐다. 피츠제럴드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사치와 방탕에 젖은 '재즈세대'의 감성을 대변한 작가다. 그는 스스로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서 향락의 늪에 투신했다. 문단의 명성과는 별개로 알코올 중독으로 신음해야 했고 아내의 정신분열과 자신의 심장발작으로 결국 삶은 파국을 맞았다. '인생은 붕괴되는 과정이다'란 자신의 독백처럼 무절제한 인생을 살면서 비참한 말로를 맞은 것. 소설집에 실린 6편의 단편들은 전후 미국의 번영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시대적 정체성을 상실한 채 부유하고 있는 21세기 우리 젊은 세대와도 상통하는 주제다. 표제작 '비오는 날 아침,빠리에서 죽다'의 주인공 찰리는 젊은 날을 술과 쾌락으로 소진했던 작가 자신의 초상이다. 알코올 중독에서 힘겹게 재기한 찰리는 친척집에 맡겨진 어린 딸을 되찾기 위해 파리로 돌아온다. 그는 딸을 보호 중인 처형의 싸늘한 태도와 지난 날의 회한속에서 문득 '방탕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것은 희박한 공기처럼 사라져 없어져 버리거나 유를 무로 만드는 것이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최고 걸작품이다.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 이 작품을 본보기로 삼았다"고 술회했다. 다른 작품 '신록'은 방탕의 종말을 더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비오는 날 아침…'의 찰리는 가까스로 정상궤도로 돌아왔지만 '신록'의 주인공 래글런드는 폭음이란 출구없는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단편 '컷 글라스보울(조각이나 세공을 가한 유리그릇)'은 사랑없는 결혼 역시 마음의 감옥임을 역설한다. 이블린은 남편과 침묵의 나날을 보내며 애정의 샘이 서서히 말라 붙는다. 30대를 거쳐 40대에 이른 이블린의 "인생은 청춘을 위한 것이야"라는 고백은 찰리와 래글런드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당시 결혼선물로 각광받던 컷 글라스보울은 작중 이블린에게 죽음을,딸에게는 장애를 초래하는 상징으로 그려졌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