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미국의 번영은 전적으로 무역 금융 기술 등 세계 네트워크에 달려있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 이외의 지역,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해 안하무인격으로 일관한다. 후진국의 상당수가 질병 가난 정치불안 등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이들에 대해 금융 및 과학분야에서 대규모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이것은 해볼만한 투자다. 단지 인도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멀리 떨어진 소국이 나머지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부터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리는 G8(서방선진 7개국과 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선진국,특히 미국은 세계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냉전기간동안 미국과 동맹국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수조달러를 퍼부었다. 이제 이들의 임무는 훨씬 더 복잡해졌다. 현 외교정책의 첫째 목표는 더 이상 전쟁 억제력의 유지가 아니다. 극빈국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세계 경제 네트워크에 편입되도록 유도하는 일이 지상과제다. 불행히도 최근의 미국 대통령들은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외교정책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 왔다. 미국의 대외원조액은 국내총생산(GDP)의 0.1%에 불과하다. 이 비율은 유럽 국가들의 3분의 1 수준이다. 냉전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대외원조를 축소해 왔다. 전통적인 외교는 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갈등은 현존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큰 위험은 한 나라가 붕괴해버리는 일이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주요 갈등 가운데 국경을 넘어선 분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돈이 다 떨어진 국가들이 스스로 주저앉았다. 이 공백은 새로 규합된 힘을 갖춘 정권이 채워주지 않았다. 잔인한 폭력만이 난무했다. 재앙은 이웃 나라로 번지고 더 먼 곳으로 흘러갔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 지속적인 가난과 경기저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국가붕괴 위험을 높이게 되고 다시 가난과 정치불안의 악순환에 허덕이게 만든다. 미국의 보수파들은 극빈국들의 붕괴가 대수냐고 말한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도적 견지는 차치하고라도,먼 나라의 붕괴가 미국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은 쿠바 베트남 보스니아 코소보 등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군사적 분쟁에 직접 개입해왔다. 또 한 나라의 정치적 불안은 금융위기 마약밀수 돈세탁 테러 난민 등의 문제를 촉발,미국 및 세계의 이익과 부합하지도 않는다. 부시 행정부와 의회는 미국의 대외 원조정책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자금이 투입될 때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한다. 먼저 세계 최빈국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가난 질병 국가붕괴 등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큰 나라를 우선 선택한다. 놀랍게도 미국 원조액중 약 6분의 1만이 48개 최빈국에 지원되고 있다. 두번째로 미국은 10여년간 유엔과 벌여온 싸움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는 자금과 행정개혁이 필요할 뿐이다. 붕괴할 때까지 몰아세워선 안된다. 셋째,부시 행정부는 최빈국을 돕기 위한 예산증액이 미국의 핵심이익에 부합된다는 점을 미국 시민들에게 적극 설명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구상에서 에이즈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한해 20억∼30억달러를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2억달러 가량만을 약속해 놓았을 뿐이다. 아주 현실적으로 말해서 부시 행정부는 최소한 GDP의 0.3%를 대외 원조에 내놓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이는 선진국 평균 원조비율에 근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미국의 태도변화가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부유한 국가들이 더 많은 기부금을 내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긍정적인 변화는 결국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더욱 안전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할 것으로 믿는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이 글은 미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교수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7월14일자)에 기고한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