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함께 따뜻해진다. 이유도 없이 만나고 싶고,먹은 맘없이 손을 내밀게 된다. 따뜻하다는 건 친절교육을 통해 도달될 수 있는 에티켓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온 세월이 묻어나는 '기운'의 문제다. 사람을 품는 후덕한 기운,'엄마'라는 말에서 묻어나는 그런 기운. 반면에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이웃을 만나면 예민해진다. 예민하게 경계하지 않으면 그 이웃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런 이웃을 만나면 까다롭지 않은 사람도 바짝 긴장하게 된다. 경계하고 긴장하지 않으면 뒤통수를 맞는다. 우리는 이웃 일본에 뒤통수를 맞았다. 98년,DJ의 일본행을 기억한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문서로서 명백하게 사죄했으니 이제는 파트너'라며 DJ는 활짝 웃었다. 그 웃음과 함께 DJ는 일본문화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했고,정부차원에서는 일왕을 '천황'으로 부르겠다고 약속했다. 어,'천황'은 제국주의 상징인데 어떻게 일왕을 '천황'으로 부를까,의아해했지만 DJ는 활짝 웃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일본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한·일 간의 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문화시장을 개방하고 난 후 일본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임진왜란은 침략이 아닌 출병(出兵)이고,조선은 '조선'이 아니라 '이씨조선'이고,식민지화한 한반도에서는 '수탈'한 것이 아니라 철도·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했단다. 종군위안부 서술은 아예 누락해버렸다. 일본에 대해 완전히 무장해제한 우리의 뒤통수를 쳐버린 일본을 어떻게 믿을까. 우리가 소박했던 것일까,일본이 교활한 것인가. 아니면 양쪽 다인가. 어쩌면 그것은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98년 선언문이 나왔을 때 유심히 봤던 부분이 있었다. 일본이 한국국민을 식민지배함으로써,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대목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이들은 문법도 제대로 모르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단히 쓰면 될 것을,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씀으로써 읽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일본측이 강력하게 주장한 말이었음을 들었을 때 '아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는 대단한 것이었다.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손해와 고통을 직접적으로 인정한 것이지만,'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했을 경우는 다르다. 우리측이 손해와 고통이라고 느끼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는 얘기일 뿐이지,실제로 손해와 고통이 있었는지,없었는지에 대해서는 괄호를 치는 교묘한 화법이니까. 그러니까 그 문장은 일본측의 교묘함과 우리측의 서두름이 빚어낸 작품인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왜 그렇게 급했을까? 상대는 만만하지 않은 이웃인데. 아니,상대는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무심하지도,정직하지도 않다. 필요에 따라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오히려 결연한 표정으로 역사를 비틀고 진실을 찜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고분고분하면 할수록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무시하고 언제든지 밟을 준비가 돼있는 이웃을 두었으니 강해져야 하나. 진실은 힘과 관계가 없는 것일텐데 힘이 없으면 진실도 지키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구나,생각하니 오싹하다. '영혼의 집'으로 유명한 칠레 작가 아자벨 아얀데의 인터뷰가 한 일간신문에 실렸다. 피노체트의 쿠데타 때문에 망명을 가기도 한 그녀에게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피노체트를 용서했는가" "그를 용서하고 안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중요한 건 진실이 알려지는 것이다.그는 17년 동안이나 권좌에 있으면서 역사책을 바꾸려 했다" 그 아얀데에게서 배운 게 있다. 용서보다는 진실 세우기가 '기초'이고 '먼저'라는 것,진실을 모르는 용서는 '용서해야 하는 과거를 반복해도 좋다'는 뜻이 된다는 것을.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에겐 희망이 없다. 그런 세력이 힘이 있으면 그 힘은 그 자체가 저주인 광폭한 파괴력이다. 기본이 안된 일본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경계하고 조심하면서…. JA1405@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