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코너] 컴팩과 델이 헤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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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가정용 PC 판매의 정상을 지켜 온 컴팩이 얼마전 델과 더 이상 PC 가격전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분기 중 델에 1위 자리를 내준 뒤 델의 저가공세 전략에 맞불작전을 펴겠다고 공언한 것에 비하면 큰 전환이다.
그렇다면 델은 승리자이고 컴팩은 패배자인가.
세상에서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이들이 던진 교훈인 것 같다.
무엇보다 델은 기존의 혁신이론을 뒤엎었다.
혁신이론가들은 산업의 혁신패턴에 대해 초기에는 '제품혁신'이 나타나고 점차 시간이 경과하면서 '공정혁신'이 중요해진다고 가르쳤다.
경쟁이 치열해질 수록 공정혁신으로 시장을 장악, 진입장벽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지난 5년간 컴팩의 선두유지를 설명해주고 있지만 델의 역전에 대해선 그렇지 못하다.
델은 바로 '유통혁신'에 눈을 돌렸다.
정보기술을 활용해 '공정혁신'을 '유통혁신'으로 이어가고,다시 '제품혁신'으로 피드백시켰다.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customization)'을 가능케 하면서 승부수를 날린 것이다.
PC시장과 유사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 준 델과 달리 컴팩은 어떤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PC시장에서 설사 이긴다 해도 '치명적 상처뿐일 전쟁'을 고집하지 않았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순간적 자존심 때문에 망하는 일이 많은 현상에 비추어 볼 때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컴팩은 퇴각하면서 주력사업을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중심으로 옮겨가겠다고 했다.
이어 고성능 서버에 탑재해 온 알파칩을 넘기며 인텔과의 제휴도 발표했다.
또 구조조정을 통해 절감된 비용으로 컴퓨터 서비스업체 인수에 나설 것임을 암시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컴팩의 전략에 회의적이다.
경기침체기에 주력사업 바꾸기가 쉽지 않고,새로운 시장에서는 IBM 등 강자들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침체기는 언제나 그랬듯 지나고 나면 역발상 전략을 부각시키는 기회이기도 했다.
어쩌면 컴팩은 미래의 교훈을 예약했을지 모른다.
안현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