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기 <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 honglaw@unitel.co.kr > 미국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서울에서 심심찮게 영어이름이 들린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어떤 분은 돌아온 지 며칠되지 않은 아들이 벌써 경찰서 신세를 졌다고 통곡이다. 가슴에 쌓일 그리움을 외면하고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는 부모 입장은 가지가지일 것이다. 한국사회에 대한 좌절부터 빗나간 아이에 대한 마지막 기대까지.그러나 영어하는 아이를 만들겠다는 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망이리라. 혹시 학업을 게을리하더라도 햄버거 먹고 코카콜라 마시다 보면 영어는 편해지지 않겠느냐는. 그렇게 되면 그저 밥이야 먹고 살지 않겠느냐는. 지난주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현지 변호사와의 회의는 점심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레 유학 얘기가 나왔다. 30년 전 하버드에서 공부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언어문제'가 없었던 점을 다행스러워했다. 영어로 교육받고 영어로 서류를 처리하고 CNN을 들으며 생활하는 환경을 '축복'이라고 했다. 언어문제가 없었으니 그저 능력대로 경쟁하면 그만이었다. 미국유학을 하면서 일본학생들과 형제애를 나눈 경험이 있다. '언어장애인'이라는 동료의식 때문이었다. 자기들 파티에 유일한 외국인으로 초대받기도 하고 아내를 부추겨 '불고기'잔치도 몇 번 베풀었다. '우리가 남이가'식의 동포애마저 우러나기까지 했다. 영어 조기교육이나 영어 공용화론에 반대하는 가장 큰 논리는 민족의식일 것이다. 민족어(?)를 보존 발전시켜야 한다는 명제에 누가 반대하랴. 박경리의 '토지'에서 느끼는 은근한 말맛을 잊을 수 있을까. 문제는 영어를 일부에게나 필요한 사치도구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어는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지구촌 대부분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일 뿐이다. '말'은 생활수단이요,생존조건이다. 영어교육에 관한한 우리는 대단히 소모적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몇 가지 언어가 무리없이 사용되고 그래서 다수가 다중문화에 익숙해질 그날,영어와 중국어가 자연스럽게 공용어로 채택되고 우리 젊은이들이 능력 그 자체로 경쟁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