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검찰이 발표한 공적자금 비리사건은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공적자금과 공공기금 등에서 빠져나간 돈의 규모가 2조원에 육박한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특히 이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들이 금융기관 임직원과 기업주 등이어서 이 분야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를 넘어섰음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나랏돈 보호에 앞장서야 할 정부투자기관마저 공공기금을 방만하게 운용,재정부실을 초래한 경우도 많아 감독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공적자금.기금 빼먹기=적발된 비리는 크게 금융기관과 기업체 등이 공적자금을 받기 위해 사기성 행각을 벌인 경우(1조4천80억원)와 공공기금을 편취 또는 횡령한 경우(5천2백억원)로 나뉜다. 공적자금 투입유발 비리로는 동아금고 불법대출사건과 (주)한국기술투자(KTIC)의 해외펀드 수익금 횡령사건,예금보험공사 상대 사기소송 등이 대표적 케이스. 동아금고의 김동렬(61) 대표 등은 총 66개 가명과 차명을 이용해 3백1차례에 걸쳐 2천4백71억원을 대주주에게 불법 대출해 줘 금고에 손해를 입히고 결산 때 2천77억원의 자산을 분식회계,우량회사를 졸지에 부실회사로 만들었다. 서갑수(54) 회장 등 한국기술투자 임직원들은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설립한 역외펀드를 통해 조성한 자금을 회사에 귀속시키지 않고 국내에 반입,개인채무 변제 등으로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예금유치 실적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허위로 조작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공적자금을 공급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사용한 수법은 예보공사를 상대로 예금대지급 소송을 제기한 것.이 사건으로 "소송사기범" 10여명이 적발됐다. 현재 예보공사가 진행중인 민사소송 가액이 2천4백40억원에 달해 공적자금이 줄줄이 샜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동양증권 부산중앙지점 김모(39) 전 차장 등이 휴면계좌 이용,전산조작 등의 수법으로 빼돌린 고객 예탁금 7백64억원을 주식투자 등에 유용한 것이나 서대전 신용협동조합 김모(42) 상무 등이 조합 여유자금 73억원으로 주식투자를 한 것도 비슷한 케이스다. 방만한 "나랏돈" 운용=정부가 공적자금을 기반으로 설치해 운용한 61개 공공기금도 상당부분 유용된 것으로 나타나 "기금운용이 방만하다"는 시중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정부투자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은 지난 99년 7월부터 정부출연금 2천억원으로 기금을 조성, 생계형 창업특별보증제를 운영중이지만 보증사고가 줄을 이어 기금고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제도는 생계용 사업장확보를 증명하는 임대차계약서와 사업자등록증만으로 보증서를 발부하고 이를 근거로 은행에서 창업자금을 대출받도록 것으로 현재 전국적으로 1천3백여억원의 대출보증이 사고를 당한 상태다. 주택을 임차하거나 취득하려는 서민을 대상으로 임대차계약서만으로 대출보증서를 발부하는 주택금융신용보증제 역시 현재 2천2백여억원이 보증사고로 대신 변제됐다. 또 기술신용보증기금은 지난 한해 동안만 전국적으로 5천5백억원을 보증사고 비용으로 지출한 것으로 확인돼 보증심사가 너무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