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도 나한테서 레슨을 받았다.

군복무 중 알게 된 이종세(총리 비서실 근무)씨와 이미 내게 레슨을 받고 있던 홍성철 당시 총리 비서실장의 소개로 정 총리 레슨을 맡게 됐다.

미8군 골프장에서 아침 일찍 만나 30분 가량 연습을 하고 9홀 라운드를 했다.

정 총리는 겨우 볼을 맞히는 수준의 초보골퍼였다.

정 총리와 라운드를 하면서 잊지 못하는 것은 당시 장관들이 매일같이 미8군 골프장으로 나와 정 총리 옆에서 아부를 해대는 장면이었다.

심지어 어떤 장관은 매 홀을 따라다니며 정 총리가 티샷하기 전 티를 꽂아주기도 했다.

샷을 하면 ''헤드업을 하셨습니다''''이렇게 하시면 더 잘 맞습니다'' 등등 골프실력도 없는 장관들이 옆에서 정 총리 마음에 들기 위해 시종일관 코치(?)를 해댔다.

샤워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할 때도 장관들은 정 총리 옆에 붙어서 비위를 맞추곤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라운드를 할 때는 경호원들이 많이 따라붙었지만 장관들이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정 총리가 라운드할 때는 아무래도 경호가 덜 삼엄해서 그런지 장관들이 늘 따라다녔다.

장관들이 자주 따라나와서 하루는 내가 홍 비서실장에게 "도저히 레슨을 할 수가 없다.

이래가지고는 총리에게 제대로 골프를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수고료도 월 30만원 정도로 넉넉히 받고 있던 터라 무척 부담스러웠다.

홍 비서실장은 나보고 직접 정 총리에게 말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침식사를 할 때 정 총리에게 "각하,골프를 배워야 하는데 주변에 너무 많은 분들이 따라다녀 코치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정 총리는 "그래요? 당신 말이 맞소"하면서 장관들을 가리키며 "당신들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고 골프 끝나고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그때 장관들이 몹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속으로 ''이 건방진 놈이 어디에서 감히…''라고 생각했을 법한 표정들이었다.

정 총리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여자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예쁜 여자를 선호했는데 그래서 캐디도 예쁜 여자를 골라 전속으로 맡길 정도였다.

라운드하면서 캐디와 농담을 자주 주고받기도 했다.

정 총리와의 만남은 3개월 정도였다.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다음에 연습을 하기로 했으나 이후 연락이 없었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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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림 :"한장상의 골프비사"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리즈는 일단 오늘로써 끝을 냅니다.

한경에서는 곧 "명사들의 골프 뒷얘기"로 후속 시리즈를 게재할 계획입니다.

많은 성원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