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역사와 정부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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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고려는 조선왕조에 비해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왕조다.
그 이유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고려는 당대에 편찬된 1차사료가 없다는데 있다.
'고려실록'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지금 남아 있는 '고려사' '고려사절요'는 조선초에 편찬한 왜곡 투성이의 2차사료다.
고려말 부패상과 혼란상에 관한 자료를 많이 실은 것이 그 예다.
그래서 고려사는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이 남아 있는 조선사만큼 제대로 파악되기는 어렵다.
기록부재가 빚어낸 결과는 이처럼 심각하다.
건국이후 역대 정부의 국가 기록문서에 대한 인식은 한심한 상태였다.
오히려 일제나 미군정기보다 못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평이다.
김영삼 정권말기까지 정부기록보존소는 마땅히 보존해야할 대상인 문서의 7%만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것도 10년이 지나면 폐기해 버렸다.
기록물을 보존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믿었던지 대통령들은 임기가 끝나면 공식문서를 제외한 통치사료는 몽땅 사저로 옮기거나 웬 비밀이 그리 많은지 소각해 버렸다.
25대 4백72년간 왕과 신하들의 회의 내용을 비롯 일거수 일투족까지 기록한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남긴 조선왕조의 기록문화 전통이 그동안 단절된 것이 못내 아쉽다.
참여연대가 22개 부처의 차관급 이상이 주재하는 2백25개의 주요회의 회의록 작성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지난해 속기록을 남긴 회의는 7개뿐이고 녹음기록을 남긴 회의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발언자와 발언 내용이 기록되지 않은 회의록이 있는가 하면 정부기록보존소는 주요 국가회의의 안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공개실태는 말할 것도 없이 낙제점이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후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청와대에서도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해 '공식 비공식 보고자료는 물론 대통령의 농담까지 통치사료로 전산화해 남기겠다'고 했는데 믿기 어려운 결과다.
조선시대보다 못한 기록관리 실태를 보면 정부가 혹 뒤에 말썽이 될 만한 기록은 남기지 않겠다는 역사공포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