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은 1963년 중앙정보부장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컨트리클럽으로 매일같이 출근하다시피했다.
새벽에 연습삼아 라운드를 한뒤 사무실로 나가곤 했다.
김부장이 서울CC에 자주 오다보니 나도 인사를 하게 됐다.
김부장은 "유(You)가 한프로냐?"라면서 "유"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당시 서울CC는 전반을 끝내면 드라이빙레인지를 지나가게 돼 있었는데 매번 김 부장과 거기서 마주치곤 했다.
김 부장은 상당히 ''자기 과시''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목이 깁스한 것처럼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고 결코 남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김 부장은 산천초목도 다 떨게 할 정도로 위세가 당당해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는 주눅이 들었다.
한번은 라커룸에서 수행원이 김 부장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김 부장은 또 ''내기 골프''를 무척 좋아했다.
라운드 도중에 돈을 주고 받지는 않았지만 라운드가 끝나면 1타에 얼마씩 하는 식으로 스코어로 내기를 했다.
그런데 말이 내기지 누가 ''감히'' 김 부장의 돈을 따려 했겠는가.
김 부장과 내기를 하는 기업인들을 보면 져주기 위해 대충 골프를 한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기 액수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돈으로 수십만,수백만원이 오갔고 자동차 한대 값이 넘어갔다는 말도 들었다.
실력으로도 김 부장을 이기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김 부장은 1주일에 다섯번 정도 새벽에 연습라운드를 한 뒤 1주일에 두번 정도 동반자들과 라운드하면서 내기를 했다.
코스에서 라운드를 많이 하는 만큼 기량도 일취월장이었다.
힘도 좋아서 드라이빙거리가 2백30∼2백40야드에 달하는 장타자였다.
내가 알기로는 중앙정보부장이 된 지 2∼3년 만에 ''싱글 핸디캡'' 실력의 수준급 골퍼가 됐다.
김 부장은 중앙정보부내에 실내연습장까지 만들어 당시 유명했던 홍덕산 김성윤 조태운 프로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특히 김성윤 프로에게는 중앙정보부 촉탁사원 신분까지 부여해 중앙정보부에서 레슨을 전담하도록 했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