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푸징(王府井). 저녁 늦은 시간이면 이곳은 선선한 밤 공기를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발코니에서 맥주를 마시는 젊은이들 사이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파고든다. 맥주회사 판촉사원들이다. 칭다오(靑島) 옌징(燕京) 등의 상표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 차림의 이들은 자기 브랜드 맥주를 마시라고 손님을 유혹한다. 중국 맥주회사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시장 쟁탈전 현장이다. 전쟁 주역은 1백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산둥(山東)의 칭다오, 베이징에 둥지를 틀고 있는 옌징, 동북지방의 맹주인 선양(沈陽)의 화룬(華潤) 등 3개 업체. 중국인들은 이들이 벌이는 전쟁을 '맥주시장 삼국지'라고 말한다. 지난해 칭다오가 베이징 맥주회사인 우싱(五星) 및 산환(三環)을 사들이면서 잠잠했던 맥주시장에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최대 맥주시장(연간 판매량 70만t)인 베이징에서 옌징과 한 판 붙자는 선언이었다. 4년 연속 국내 판매량 1위 자리를 옌징(작년 판매량 1백41만t)에 빼앗긴데 대한 칭다오(약 1백40만t)의 화풀이이기도 했다. 설립 후 20여년 동안 베이징을 장악해왔던 엔징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칭다오의 본영인 산둥성의 맥주회사인 우밍(無名) 취푸산쿵(曲阜三孔) 라이저우(萊州)등을 사들여 이들의 브랜드를 옌징으로 바꿔버렸다. 옌징이 탈(脫)베이징을 선언하며 칭다오와 전면전에 나선 것이다. 동북의 화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랴오닝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3성의 7개 맥주회사를 사들여 이 지역을 장악한 화룬이 남하 작전에 나선 것이다. 화룬은 작년 쓰촨(四川) 안휘(安徽)성 등의 맥주회사 4개를 매입했다. 양대 업체의 격전지인 베이징과 산둥을 우회, 나머지 시장을 차지하겠다는 계산. 지난 94년 홍콩투자가가 설립한 이 회사는 올해 모두 1백20억위안(1위안=약 1백60원)을 들여 전국 각지에 맥주공장을 차리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화룬의 우회전략을 눈치 챈 옌징과 칭다오가 최근 서남지역 공략에 나서면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맥주 생산량은 약 2천1백만t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다. 매년 5%의 속도로 증가, 2004년쯤 미국을 제칠 전망이다. 세계 최대 맥주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맥주시장의 '중원 대 혈전'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