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추진해 오던 IT관련 업무에 대한 잠정 '조정안'이 마련된 모양이다. 하지만 뭣 때문에 조정이 필요했고 또 누구를 위한 조정인지를 감안하면 차리리 부처간 '담합'에 가까운 것 같다. 11개 분야에서 잠정 조정안이 보여주는 논리가 재미있다. 우선 애매하기 짝이 없는 '차별화 논리'가 나왔다. 예컨대 게임분야의 경우 콘텐츠는 문화부,가정용 게임기술 개발은 산자부,온라인ㆍPC용 게임기술 개발은 정통부라는 식이다. 각 부처의 기존 게임지원센터는 이 논리로 역할을 분담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차별화를 못느낀다는데 정부만 차별화를 주장한다. 전자책,온라인 애니메이션,캐릭터,음성정보 분야에도 비슷한 논리가 동원됐다. 해외 벤처지원센터 조정에는 '비차별화 논리'가 적용됐다. 정통부는 IT중심의 센터를,산자부와 중기청은 IT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되 IT기업과 비IT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센터를 추진한다는 식이다. 이름상으로는 차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비차별적인 업무를 추진한다는 얘기다. IT 인력양성에도 이런 유사한 논리가 이어진다. 또 수요와 공급간 분리 논리도 동원됐다. 수요와 공급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중소기업의 IT화 사업을 두고,정통부는 소프트웨어 임대사업체의 육성과 모델 개발을,산자부 중기청 등은 모델 개발의 확산과 보급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구성ㆍ운영 차원에서만 조정의 시늉을 낸 사업들도 있다. 전자상거래처럼 특정 부처로 이미 조정이 끝난 사업을 포함시킨 흔적도 보인다. 정부는 걸핏하면 조직과 행정에 기업마인드를 도입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만약 기업이 조정했다면 지금의 정부안과 같을까. 아직 남아 있는 포스트 PC산업이나 표준화 문제의 조정에는 또 무슨 논리가 동원될지 자못 궁금하다. 부처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기업을 생각한다면 사안별로 한 부처를 지정해 줄 필요도 있다. 달라진 것 없이 담합으로 끝나면 세금을 내는 기업들이 관련부처 폐지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안현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