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1 21:34
수정2006.04.01 21:36
재료가뭄에 시달리는 서울 외환시장은 활력을 잃었다.
장중 흐름은 달러/엔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 좁은 보폭을 거니는 정도다. 지난달 28일 1,294원에 마감한 이래 2주동안 환율은 1,280원대에서만 마감가를 기록하는 붙박이다.
지난달부터 제기돼 온 물량부담에 대한 압박은 여전히 수면아래 잠재돼 있지만 '기대감의 자기실현'은 아직 미지수다. 이르면 이번달 말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인 직접투자자금(FDI)으로 대표되는 공급요인은 거래자들의 고점매도전략을 강화시켰다.
이번주 환율도 '기간조정'의 연장선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거래범위는 '1,280∼1,300원'의 박스권이다. 작게는 1,285원을 중심으로 위아래 10원 범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내리지 않는 비만큼이나 시장재료는 환율 이동에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다만 강보합쪽에 무게를 두는 거래자들이 많다.
방향타는 여전히 달러/엔이며 지난주 말 움찔했던 달러/엔의 상승기운이 시장거래자들의 심리에 파고 들었다. 대기성 요인에 의해 상승폭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 이슈가 없다 = 지난주 환율은 재료가뭄에 시달리며 1,285원을 중심으로 지리멸렬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감가만 놓고 봤을 때 1,284.70원(8일)에서 1,286.70원(5일)까지 불과 2원 범위에 불과했다.
시장거래자들은 비를 바라는 농심만큼이나 재료의 출현을 기다리며 소극적으로 거래에 나섰다. 그럼에도 거래규모는 거의 줄지 않고 이달들어 매일 30억달러(현물환 기준)를 넘었다.
달러/엔도 큰 폭의 이동을 보일 만한 여지가 많지 않은데다 쉽게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FDI, 600선 지지여부를 놓고 실험대에 선 주식시장 등 시장주변여건은 방향성을 찾기엔 손가락 끝이 확실하지 않다.
은행권외에 업체나 역외세력의 시장참여도 소강상태를 보인 지 오래다.
시장심리는 아래쪽으로 향해 있어 '고점매도' 전략이 상승을 가로막고 있지만 달러/엔의 상승가능성도 한켠에서 똬리를 틀면서 달러팔자(숏)플레이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번 주에도 내부요인이나 외부요인에 별다른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은 눈치다.
◆ 엔화 약세 미풍에 대한 반응 = 주초반 방향타는 달러/엔이 잡고 있다. 11일 발표되는 일본의 1/4분기 국내총생산(GDP)발표를 놓고 엔화는 고개를 돌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부분 거래자들이 일본 경제의 침체상황을 확인해 주는 쪽으로 보고 있어 엔화는 약세에 기운다는 전망이다.
유로화의 약세를 등에 탄 엔화 강세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다.
달러/엔의 118엔대에 진입은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확인했다. 일본 경제 펀더멘털의 약화는 118엔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이내 119엔을 쉽게 회복한 달러/엔은 지난주 말 120.94엔에 마감했다. 2주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며 이번주 122엔선까지 진입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122엔선에서 안착하게 되면 달러/원은 1,300원도 가능해뵌다.
또 14일 일본의 6월 월례 경제보고서도 엔화 약세에 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주 말 미 제조업연합회가 달러화 강세정책이 수출 생산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달러 강세 정책 기조의 변경을 요구했으나 폴 오닐 재무장관은 미 기업의 대처능력이 충분하다고 밝혀 정책기조의 변경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미국이 강한 달러를 포기해도 통화는 경제펀더멘털의 반영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엔화가치의 상승은 어렵다"며 "최근 유로화 약세 등과 점차 멀어져 펀더멘털 반영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하면 적정환율은 1,300원 전후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의 한 딜러는 "달러/엔이 오름세를 탈 것으로 예상되고 역외세력의 매수세 정도에 따라 상승폭이 결정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 공급우위 지킨다 = 환율 반등시에 꼬박꼬박 쏟아지는 고점매도물량은 현재 시장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1,300원은 어렵다'는 점을 주지하고 있는 시장거래자들은 1,290원대에서는 어김없이 대기매물을 통해 환율을 내림세로 끌었다.
지난달 말 외화예금은 사상 2번째로 많은 127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업체들의 수출대금이 외환시장보다는 외화통장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는 언제고 손쉽게 시장에 쏟아질 수 있는 대기성 매물임을 감안하면 FDI 등과 함께 환율의 급락으로 이끌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물량 공급 예상에 대한 불안감은 시장에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외국인 주식순매수량의 급증, 외자물량 유입 루머 등은 시장에 언제고 터질 지 모르는 달러공습을 대비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최근 수급도 달러/엔 동향을 따르고 있다. 1,290원 위에서는 업체들이 풀고 1,270원대에서는 정유사를 중심으로 한결제수요가 유입되고 있다
LG전자와 네덜란드 필립스의 브라운관(CRT) 합작법인인 'LG필립스 디스플레이 홀딩스'가 공모한 20억달러의 해외자금 중 11억달러가 LG전자의 부채상환용으로 쓰일 것이란 전망을 비롯, 14일 하이닉스반도체의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가 결정과 15일 하이일드본드에 대한 프라이싱 등을 통해 총 13억5,000만달러, 20억달러에 이르는 DR발행 등이 예상된 한국통신 등이 이달중 예상되는 거대규모의 외자유치분이다.
이외에 15일 GM의 대우자동차 인수의향서 제출과 현대투신 매각협상의 진전여부 등도 관심사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보이지 않는 물량부담은 상승이 버거움을 보여주고 있다"며 "LG-필립스 소문이 실제로 확인되면 1,280원이 깨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기타 요인 = 주식시장의 체감은 최근과 같이 영향력을 발휘하긴 다소 어려울 전망이다. 상승탄력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인식과 실적과 경제지표에 주목하고 있는 뉴욕 증시의 향방도 썩 긍정적이진 않다.
주초 예정된 외국인 주식순매수분에 의한 달러공급은 이를 매도분과 커버하는 최근 동향으로 미뤄 그 체감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이 방향감을 상실함에 따라 은행권은 포지션 흐름이 굳은 채 포지션을 이월하지 않는 보수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자신감의 상실이 가져오는 거래는 환율 흐름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게 한다. 위아래 막힌 박스권을 예상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