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船 영해 침범과 국가안보 .. 이동복 <명지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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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이 전개되듯이 일정한 시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북한 대형 수송선박의 우리측 영해 및 NLL 침범사태에 대한 정부 대처는 대다수 국민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국회와 언론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 문제에 관한 정부 당국자들과의 대화는 시종일관 '사오정식 대화'를 연상시켜 주고 있다.
북한 수송선박들의 우리측 영해 및 NLL 침범 사건은 그 행위 자체가 국민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북한측 선박과 우리 해군 함정간에 이루어진 '우리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김정일 장군이 개척한 항로로 항해 중'이라는 교신 내용은 우리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항로를 개척하면서 남한 군당국이 보이는 반응을 보고하라'는 북한 해운당국의 무선 지시 내용이다.
그런데, 정부 당국은 이번 사태를 '민간 선박이 절차를 모르는데서 초래된 우발적 사건'으로 평가절하하면서 오히려 '남북대화를 재개시켜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전화위복을 다짐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우발적'이 아니라는 것은 상황의 전개 과정을 보면 자명하다.
북한은 지난 수개월에 걸쳐 함정과 어선을 갖고 NLL을 침범했다가 빠져나가는 도발행동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재작년 '서해교전'의 무용담을 자랑하는 우리 해군은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재작년의 서해교전은 현지 해군지휘관들이 교전수칙에 충실하다 보니 생긴 일이지, 정부당국의 의지가 담긴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이번에는 정부 수뇌부가 서해교전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군의 행동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고, 북한측에서는 바로 이 점을 시험해 보았다는 가설도 등장한다
이번에 북한은 대형 수송선박을 가지고 NLL의 '침범'이 아니라 '유린'을 시도한 것이다.
북한의 수송선박들은 또 지난 반세기 동안 제주해협을 통과할 엄두도 내지 않았었다.
오랜 기간 하지 않던 것을,그것도 한 척의 선박이 아니라 여러 척의 선박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하는 것은 '계획적'인 행동이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또 '선군정치(先軍政治)'를 표방하는 병영국가인 북한에서 '내각운수성' 소속 선박을 '민간 선박'으로 간주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이번 일은 만약 1년 전 국민적 감격의 대상이었던 6.15 '남북공동선언'이 아직 의미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남북이 사전에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그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전리품'으로 챙기는 북한의 그 동안의 대남 협상관행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김대중 대통령의 현 정부는 이번 일도 소위 '선공후득(先供後得)'의 범주에 포함시켜 기왕의 일은 '묵인'해 줄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이를 '전리품'으로 챙기도록 허용하고, 그 대신 그 대가로 남북대화와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낚시질하려 하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재개되는 남북대화와 실현되는 정상회담에서 현 정부는 과연 무엇을 논의하고 무엇을 이룩하려 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국제법과 국내법으로 '무해통항(Innocent Passage)'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의 '영해 및 접속수역법'은 제5조3항에서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일정 수역에서 문제의 '무해통항'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가 북한 선박들에 의한 동시다발적인 영해 및 NLL 침범 행위를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보느냐 아니냐의 여부로 귀착된다.
인류역사는 '유화'가 평화를 지켜 주기는 커녕 오히려 전쟁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수 없이 보여주었다.
1938년 독일 뮌헨에서 영국의 네빌 챔벌린 총리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에게 체코슬로바키아의 땅 한 조각을 주고 잡은 것으로 착각했던 '우리 시대의 평화(Peace in Our Time)'라는 신기루가 그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
db1937@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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