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 연세대 경제학 교수 / 동서문제硏 원장 >

1996년은 미국의 증권시장 지표인 다우존스가 발표된지 1백년이 되는 해였다.

증권거래소는 기념식 준비를 위해 1백년 동안 지속적으로 상장된 회사를 찾았는데 놀랍게도 그런 기업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에디슨이 발명했던 전등의 특허로 설립된 GE 뿐이었던 것이다.

그 많은 상장기업 중 유일하게 웰치 회장만이 1백주년을 알리는 개장의 종을 치는 영예를 안았던 것이다.

미국처럼 안정된 경제에서도 1백년을 버텨온 기업이 단 하나밖에 없다니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경제에서도 지난 3년간 대기업의 순위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가.

시장의 불확실성과 역동적 변화로 기업의 내일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글로벌 경쟁으로 기업의 수명은 더 짧아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1백대 기업에 신규로 진입한 기업이 2백13개나 되었지만,평균수명은 4∼8년에 불과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오히려 그렇게 장수한 GE의 생존비결이다.

GE의 성공은 한마디로 끊임없는 변신을 추구한 ''다각화''에 있다.

시장의 역동적인 변화에 유연성있게 대처한 것이 성공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GE는 현재도 핵심산업과 기술 및 서비스 산업을 연계한 11개 사업군에서 가전,발전,방송 및 금융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GE의 전략이 우리 문화에서는 어떻게 평가될까.

다각화는 곧 ''문어발식 확장''이고 ''대표적인 개혁 대상''이 아닌가.

GE를 한국의 재벌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GE가 다각화의 성공모델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다각화만이 기업의 장기적 생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로 세계의 음식문화를 바꾼 맥도날드나 접착제와 관련된 제품생산에만 집착하고 있는 3M은 전문화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전문화로 생존하는 기업수만큼 다각화로 살아남은 기업도 많고 그 반대의 논리도 성립된다.

우리 경제에서도 전문화율이 가장 높았던 기아와 삼미 한보가 먼저 쓰려졌고,다각화된 대우 역시 비운을 맞았다.

따라서 전문화와 사업다각화는 결코 ''선''과 ''악''의 흑백논리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출자비율과 부채비율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업종,기업마다 특성이 다른 문제를 어떻게 몇%의 룰로 규제할 수 있겠는가.

부채가 많고 출자비율이 과다해 수익성에 걸림돌이 된다면,당연히 신용도가 낮아지고 주가가 폭락해 시장에서 제재를 받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너 경영과 재벌조직은 비효율적이고 전문화된 독립경영체제만이 최선이라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형평논리나 사회문화적 가치에 바탕을 둔 편견일 뿐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설득력이 약한 논리다.

모두 장단점을 함께 안고 있는 산업조직의 한 형태일 뿐 정부가 나서서 획일적으로 규제할 사안은 아닌 것이다.

성공적인 기업모형에는 결코 어떤 정형화된 ''틀''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모델이 있다면,그것은 단지 시장변화에 가장 유연하게 대처해 끊임없는 변신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정형화된 틀로 획일적인 규제를 시도하는 기업정책은 상당한 시행착오의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특정한 기업정책의 모델을 갖고 있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업정책은 기업이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할 수 있는 유연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제도의 경직성이 기업의 변신을 가로 막는다면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겠는가.

특히 사업조정이나 경영형태 등 생산활동을 직접 규제하는 정책은 가급적 억제돼야 한다.

불공정거래나 소수 오너의 전횡,부당한 행태는 당연히 규제돼야 하지만,이것이 행여 경영활동에 관련된 전반적인 규제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 기업환경의 개선이 이념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기업정책의 패러다임도 새롭게 변화돼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