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원 이상 법인세를 납부한 기업에 대해 납부액 1%를 정치자금으로 의무기탁토록 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두르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가 명분이지만 과연 정치자금법이 개정된다고 음성적인 정치자금이 양성화될 수 있는 여건인지,결국 기업의 추가 부담만 강요하는 꼴이 되지 않을지,의문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선관위는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정치자금의 안정적 조달을 위해서는 정치자금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며,지난해 4·13총선 과정에서 파악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각계의 의견을 개정안에 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엄존하는 관행을 무시한 채 법개정만으로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건 착각이다.

1년여 동안 의견수렴을 했다고는 하나 과연 정당 및 기업 당사자들과 어느 정도 의견조율이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우선 돈을 내는 기업입장에서 따져볼 일이다.

기업의 ''헌금''은 그것이 누구에게 주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 기본적으로 자율적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이 낼 액수를 스스로 정하고 정당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다양한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과 특정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일적인 정치자금납부는 사리에 맞지 않는다.

자기 기업에 유리한 정당과 국회의원을 가리는 것은 순전히 기업판단의 몫임은 물론이다.

또 과거와 달리 우리 기업들은 주주 위주의 경영이 정착되고 있다.

정당활동에 필요한 돈을 기업이 부담한다고 할 때 주주들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정당은 기업만이 아닌 모든 국민을 상대로 그 존립기반이 유지된다.

그러함에도 정치비용을 기업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 하나 지적한다면 아직도 후진적인 우리 정치현실에서 1%의 의무기탁금만 내고,정치권을 나몰라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법인의 후원회 회원을 금하고,주거나 받는 사람의 공무담임권 박탈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기업들은 의무기탁금외에 또 후원금을 내는 이중부담을 안게 되리라는게 중론이다.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지난 99년에도 이번과 비슷한 내용으로 국회에 제출돼 정치개혁특위에서 1년동안 설전만을 벌인채 15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됐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논란이 재연되는데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