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변변찮은 인생이다.

늘상 추리닝 차림에,오락실에서 시간을 죽이고,만화책이나 뒤적이며 히히덕대고,고등학생들한테 포르노 테잎이나 팔아먹고.뿐인가.

고작 변두리 클럽을 기반해 구멍가게 주인이나 등쳐먹는 "조직"에 빌붙어,"X할"을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간이 작고 마음도 모질지 못해 후배들에게도 호구취급을 당하는 서른 중반 즈음의 "생양아치" 이강재. 또다른 남루한 인생이 있다.

눈망울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스물세살의 중국여자 "파이란(白蘭)".피붙이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 숨어든 불법체류자로 먹고살기 위해 위장결혼 서류를 꾸민 그는 서류에 붙은 남편(이강재)의 웃는 얼굴 사진에 마음을 준다.

단칸방에서 막일을 하며 밤마다 꺽꺽 쏟아지는 울음을 삼키는 여자에게 어느덧 남자는 지친 마음을 기댈 큰 언덕이 된다.

여자는 서투른 글씨로 "남편"에 대한 연정을 담은 편지를 써내려간다.

최민식.장백지 주연의 "사랑"영화 "파이란"(감독 송해성.제작 튜브 픽쳐스)은 "철도원"의 원작자이기도 한 일본작가 아사다 지로의 "러브 레터"를 원작으로 삼았다.

애잔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멜로계열에 서있지만 그 질감이나 느낌은 몹시 다르다.

구구절절 애절한 사랑으로 눈물을 자아내기보다 구질구질한 삶이 가진 "가치"에 시선을 둔다.

극중 강재가 열중했던,좀처럼 인형이 집어지지 않는 인형뽑기처럼 영화는 질퍽한 삶의 밑바닥에 숨어 좀처럼 잡히지 않는 희망을 사랑이라는 집게로 건져올린다.

남자는 여자에게 삶의 온기를 제공하고,남자는 서류상의 아내 파이란의 시신을 거두러 가는길에서 구원을 찾는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그런 점에서 감독의 말처럼 "희망적인 비극"이 적절한 표현일 수 있겠다.

"카라"로 데뷔했던 송감독은 두번째 작품에서 훌쩍 성숙한 면모를 과시한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남녀의 삶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영화는 때로 시간을 뒤집고 엇갈린 기억을 들추면서 서서히 사랑과 구원을 형상화한다.

아주 작은 모티브로 서로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는 두사람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연출솜씨나,손에 잡힐듯 질감있는 화면,감정과 충분히 조응하는 음악도 아름답다.

하지만 "파이란"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역시 배우들이다.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장백지는 딱 파이란이고,"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최민식은 더도 덜도 아닌 3류 양아치 이강재다.

쓸쓸함이 묻어나는 장백지의 허스키한 음성과 고독한 울림이 있는 최민식의 비음섞인 음성도 애잔한 정서를 더한다.

공형진등 조연들도 탄탄하게 작품을 떠받쳤다.

단,대단히 사실적인 전반의 분위기와 달리 작위적인 인상이 짙은 결말부분은 아쉽다.

보지 않고,만지지 않아도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게 다가설 영화.28일 개봉.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