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빠져 넓게 드러난 갯바닥에 작은 배들이 얹혀 있다.

기우뚱한 모습이 어딘지 쓸쓸해 보인다.

늦은 오후의 빗기 비친 햇살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멀리 바닷물은 얇게 푸르고, 그 너머 작은 섬들의 윤곽이 희미하다.

바람이 분다.

갈매기가 그 바람을 타고 소리없이 날아 스친다.

갈매기를 빼면 모든게 서 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디선가 본듯 하다.

한갓진 봄포구의 늦은 오후.

그런 제목의 사진작품을 아주 크게 확대해 세워 놓은 것 같다.

장고항.

아산만에 접한 당진땅의 작은 포구를 찾는다.

봄꽃 화사한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속으로 들어선다.

한번 뒤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봄이 연출한 꽃소식은 팝콘을 튀기 듯 마음을 달뜨게 했다.

잠시 멈춰서 숨을 돌릴 필요가 있다.

모자란 것만 못한 지나침을 경계하기 위한 느슨한 브레이크걸기다.

해가 지는 쪽의 포구라서 그런가.

장고항은 그런 시간을 갖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장고항은 "맛있는" 포구이기도 하다.

봄철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 사람들이 "실치"라고 부르는 아주 작은 생선이 앞바다에서 나기 때문이다.

뱅어포를 만들 때 쓰는 생선이라면 실치가 어떻게 생긴 생선인지 짐작할수 있다.

장고항에서는 갖 건져온 실치를 회로 먹는다.

장고항을 벗어나서는 실치회를 맛보기 어렵다.

실치는 워낙 몸이 작고 가늘어 잡히는 즉시 죽기 때문에 장고항 근방에서만 회를 먹을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민들이 뱅어포를 만들 때 심심풀이로 실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그 맛이 알려지면서 장고항의 맛을 대표하게 되었다.

장고항 어촌계장을 지낸 송대석씨는 "실치를 야채와 섞어 양념고추장에 비벼먹는 요리법을 고안하면서부터 실치회가 더 널리 알려졌다"고 얘기한다.

물론 실치회를 먹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좋아하는 야채만을 골라 조금씩 비벼먹거나 처음부터 접시에 담겨 나온 야채와 실치를 모두 섞어 비비기도 한다.

실치를 밥에 넣어 비벼먹는 사람도 있다.

실치회를 사시사철 맛볼수 있는 것은 아니다.

3월 초순에서 시작해 5월 초순이면 끝이다.

5월말까지 잡히는 실치는 크고 맛도 신통치 않아 회로 먹지 않는다.

5월말이 넘으면 아예 잡히지도 않는다.

올해 실치회를 맛볼수 있는 시간은 3주밖에 남지 않는 셈이다.

가장 싱싱한 실치회를 먹기 위해서는 배가 그물을 걷어 돌아오는 시간을 알아둬야 한다.

들쭉날쭉이기는 하지만 보통 오전 10시, 오후 4시쯤은 반드시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그 시간을 맞춰야 배에서 갓내린 실치를 회로 먹을수 있다는 뜻이다.

장고항에서는 15척 정도가 실치잡이를 하고 있고 인근 성구미와 교로리쪽에서도 작업을 해 장고항으로 가져오는데 잡히는 양이 예년만 못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장고항 일대가 전부 뱅어포를 만들기 위해 실치를 펴 말리는 까래장이었다"고 송씨는 설명한다.

지금은 이 일대가 "실치회 개시"라고 쓰인 작은 플래카드를 건 식당이 들어서 있고 뱅어포는 마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서해수산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당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