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

나른함에 온몸이 처지고 똑같은 일상에 참을수 없는 지겨움이 치민다.

갑자기 훅해진 날씨와 함께 짜증이 오븐 속의 빵반죽마냥 부풀어 오른다.

봄은 때로 기분을 한없이 들뜨게 하지만 하염없는 무기력의 나락으로도 떨어뜨린다.

봄을 타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반갑잖은 우울증.

이른바 "스프링 피버"라 했던가.

황사 낀 하늘만큼이나 칙칙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그도 말없이 차를 몬다.

내린 곳은 태릉 푸른동산.

숲길을 한참 걷다보니 요란한 총소리가 천지를 뒤흔든다.

"백발백중"이라는 돌비석 너머 태릉국제종합사격장이 보인다.

만사가 귀찮다는데 웬 총질.

그가 "스트레스 푸는데 최고"라며 팔을 잡아끈다.

일반인 사격장에선 총으로 진흙접시를 쏘아 맞추는 클레이 사격을 할 수 있다.

친절한 교관이 총 다루는 법과 안전수칙을 꼼꼼히 들려준다.

사격장을 즐겨 찾는다는 그가 먼저 시범을 뵌다.

"준비하시고 고!"

힘찬 구령과 동시에 오렌지색 접시가 하늘로 뛰쳐 오른다.

"탕-!"

무감각한 정신을 관통하는 총성과 함께 접시가 와장창 부서져 내린다.

명사수다.

명사수.

드디어 실전이다.

3.5kg이라는데 꽤 무겁다.

폼을 잔뜩 잡고 조준을 한다.

"타앙-!"

경쾌하고 청아한 소리.

개머리판을 댔던 뺨과 어깨에도 진동이 온다.

총알은 접시를 잘도 비껴간다.

시속 40~60km라는 표적을 쫓다보니 25발이 순식간에 다 없어진다.

백발백중은 커녕 이십오발영중이다.

"접시 사이로 막가는구나"

그가 약을 올린다.

두번째 라운드.

역시 허탕만 계속하던 차에 접시가 산산조각나 떨어진다.

끼야악.

절로 환성이 터진다.

옛날 영국에서 귀족들이 하던 비둘기 사냥에서 시작됐다가 표적을 진흙(클레이) 접시로 바꾸면서 클레이사격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단다.

아직도 접시는 "비둘기(피전)"라고 불린다.

어쨌든 접시잡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인간에게 내재된 파괴본능과 폭력적인 본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 인기 높다"는 교관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만.

"접시를 깨뜨리자"라는 가요도 이런 쾌감을 노래한 걸까.

한바탕 총질을 끝내고 나니 처져 있던 기분이 반짝반짝 살아나 있다.

그가 빙그레 웃는다.

"확 풀렸지?"

알고 보면 세심한,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

<> 참고 = 이용료는 지도비와 장비대여료를 포함해 1라운드(25발) 2만8천원.

동산 입장료(성인 1천원)는 따로 내야 한다.

1천8백대 규모의 주차장은 종일 3천원.

연중무휴, 오전9시~오후6시

(02)972-2101~3, 사격장 (02)972-0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