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관료의 승진이나 신규 임용의 정기인사는 매년 6월과 12월 두차례에 걸쳐 단행됐다.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전형위원들이 관리의 근무평정표에 따라 관직마다 적격자 3명씩을 선발해 올리면 왕이 최종적으로 한 명을 낙점하고 이를 관보인 조보(朝報)에 공표한다.

이렇게 결정된 사람은 본인과 처의 부모 조(祖) 증조 고조의 명부를 사헌부와 사간원에 보내 결격사유의 유무를 판정받는 ''서경(署經)''을 거친 뒤에야 발령을 받았다.

서경을 받을 때 혹 근친끼리 같은 관청에 근무하게 되거나 재판관과 피고인, 고시관(考試官)과 응시자가 되는 경우는 하자가 있는 것으로 판정해 발령받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제도를 ''상피제(相避制)''라고 했다.

정실개입으로 인한 부정과 권력의 집중화를 막기 위한 예방조치였다.

상피제는 이미 고려때인 1092년 성문화됐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조선 정종 원년(1399)에는 엽관운동을 막기 위한 ''분경(奔競)금지법''이 시행되고 세종때부터 고려처럼 친족 외족 처족의 4촌이내로 상피가 법으로 규정된 이래 경우에 따라선 8촌까지도 상피대상이 되고 연고지역의 지방관이 되는 것도 금지되는 등 그 범위가 훨씬 더 넓어졌다.

분경금지법이나 상피제는 ''경국대전''에 실려 조선왕조 5백년간 시행된 법이다.

하지만 왕조초기에는 그런대로 지켜지던 이 법은 중기 이후에 오면 실효성을 잃고 만다.

문중의식이 강해져 문벌을 형성하고 사돈의 8촌까지도 챙기는 관습 때문에 조선왕조를 통틀어 이 법이 실제로 얼마나 실효를 거뒀는지는 의문이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정부 부처의 장관 차관 국장 과장과 1백20개 요직에 같은 지역이나 같은 학교출신이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매년 한차례씩 인사운영실태를 점검하고 인사청탁을 한 공무원은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조선시대보다 확대된 ''인사 상피제''를 실시하겠다는 얘기다.

인사편중시비를 없애려는 의도겠지만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오히려 은연중 특정학교나 지역편중을 심화시키고 능력있는 인사가 역차별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